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고 존중해 줄 수 있을까? 아, 그래.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바라봤을 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다면 멀리하면 된다. 근데 그게 나라면? 떠나지도 못하고 곪은 상처를 드러내지도 않고 계속해서 안고 살아가는 거다. 사람이 상대방이 극도로 싫어지면 죽을 때까지 피하거나 피하지 못한다면 막말을 하게 된다. 막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나이니 배로 스트레스를 얻는다.
그런 나를 부모의 마음처럼 조건 없이 감싸줄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다. 엄마랑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은 더욱 많다. 동족혐오와 가치관 차이를 동시에 겪을 수 있는 핏줄이다. 그럼에도 아닌 척 나에 관해서 많은 걸 봐주고 있는 게 부모이기도 하다.
편견이 가득한 내가 나를 남처럼 바라봤을 때 미운 면이 너무도 많아서 욕을 하는데 남에게 할 수가 없다는 게 제일 큰 단점이다. 결국 본인 스스로를 욕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수치스럽게 될 것이고 발가벗은 기분으로 웃으면서 나를 더 나락으로 보내버릴 거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연인이라도 감추는 게 나을 것 같은 거 있지 않나. 심지어 그걸 상대가 배려하는 중이라고 스스로가 말한다면 최악이다. 묵묵히 있어주는 걸 원했지 상대의 생색을 들으면서 나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이쯤에서 드는 생각. 언제쯤 괜찮아질까? 남들은 본인 생활에서 소소한 행복도 얻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왜 나만 별 거 아닌 걸로 죽네 사네하는 소크라테스가 되어있을까? 약을 먹어지면 차도가 있어야 하는데 먹을 때만 괜찮고 약이 끊기면 바로 죽을상이다. 미운 모습을 붙들고 성과 없는 인생을 살면서 늘 패배감만 느껴야 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가지 않는 나를 보면서 언제까지 질책해야 할까? 참을성이 없는 나를 보면서 비난하는 건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내가 필요함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급한 안건은 아니다. 골방에 처박혀서 전공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 전공을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다. 취미생보다 못 한 위치에 있는 내가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아예 포기했으면 모를까 애매하게 붙잡고 있는 모습이 정말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벼랑 끝에 떨어지면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존감은 낮으면서 자기애가 높으면 어떻게 될까?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그냥 무작정 도망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 동생은 나만 괴롭힐 수 있어! 뭐 이런 것처럼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다가도 옆 사람이 작은 돌 하나만 던지려는 시늉을 하면 날이 선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야?
이게 반복되면 마음의 그릇은 한없이 작아져 상대의 호의에도 날이 설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괜히 한 번 비꼬아서 생각한다. 무심한 말에 되려 상처를 받고 마음속에서 상대를 천천히 끊어낸다.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처럼 철저히 본인을 고립시킨다. 추운 곳에서 버티기 위해 지방만 키우면서.
근 몇 주 운동을 못 갔다. 그나마 쌓아둔 티끌 모아 티끌이었던 나의 체력과 코어힘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상냥함은 체력에서 온다. 나는 나에게 상냥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늘 악마의 속삭임이 나를 유혹한다. 참지 못하고 열심히 입에 무언가를 욱여넣었다. 그나마 뺐던 살이 다시 올랐다. 나의 한숨이 잦아졌다. 결국 열심히 집어넣은 걸 다시 뱉어내는 과정도 있었다. 억지로 비워내니 편안했다.
인내는 결국 꽃을 피운다. 어떤 분야든지 건강, 일, 성과 등 노력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뒤통수를 맞고 다녔다. 얼얼한 뒤통수를 잡고서 늘 뻐근해진 목을 스트레칭했다. 당연하다. 꽃을 피우기 원하면서 인내하지 않으니 얻는 건 하등 쓸모없는 가능성이라는 씨앗이다. 가능성이 결국 가능성으로 남는다면 피워냈다 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익힌 건 합리화뿐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어. 내가 느려서 그래. 이거라도 하고 있으니까 정체된 건 아니야. 개뿔.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고 하고 싶기만 한 걸 하면서 반뿐인 성취감을 느낀다. 카페에 앉아 검은물을 마시면서. 괜히 머리를 굴려야 한다면서 단 것도 입에 넣어준다.
그래도 글을 써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어딘가에는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제법 감상적인 글을 적어도 글이라는 매개체가 주는 표현의 자유라 포장할 수 있다. 그래도 나 잘 웃으면서 삽니다. 아직 살아있으니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