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살고 싶어 힘을 내려다가 시작도 못하고 진부터 빠졌다
담백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가도 쉽게 감정에 휩쓸려 허울뿐인 말들만 늘어놓을 때가 많다. 편안하게 일상 얘기를 하고 싶다가도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뭐 물론 누군가에게 말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글을 적는 게 낫다 싶다가도 아무래도 누군가 보는 글에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진다. 어떤 방식으로 솔직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지 2주일. 성공한 횟수는 현저히 적다. 소소하게 일어나는 시간에서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는 것도 못하다니. 어이없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일찍 잠들지를 않으니 일어나는 시간이 당겨질 리가 없다. 하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등 무언가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이기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지만 귀찮음에 져서 정작 안 하는 게 수두룩이긴 하다만 암튼 그렇다.
잠자기 전에 1시간 정도는 전자기기를 떼어놓는 게 좋다고 하는데 이미 글러먹은 부분들이 많다. 난 게임을 한다. 할 시간이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자기 전 잠깐 몇 시간 중에 해야 한다. 또 미디어 중독이라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맞춰 굴러가는 눈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인터넷 웹소설은 또 뭐가 그리 재밌는지 주기적으로 본다. 웹툰이나 sns는 당연지사다. 이런 걸 포기를 못하니까 잠이 늦어지는 거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생각하다가도 새벽 1~2시는 허사다. 미라클 모닝을 함께 진행하는 익명의 사람들의 인증 사진들이 채팅방에 올라올 때마다 드는 자괴감에 아 나는 물 흐르듯이 일상에 녹여야 하는구나. 각을 잡고 무언가를 하려면 거부감이 드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와 하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서 하는 합리화일 수도 있다. 나의 성취감이 자란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겠지.
현재로서의 목표는 새벽에 운동하는 거다. 저녁은 사람 많아서 헬스장 가기 싫다. 사람 많은 건 왜 이렇게 싫은지. 헬스 피티가 잡혀있지 않은 이상 최근에 개인 운동은 거의 안 했다. 등이 굽어가는 게 느껴졌다. 역시 운동은 생존이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다시 헬스장에 갔다. 피티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강제성을 만들어야 한다.
갓생을 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청개구리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강제성을 부여하면 괜한 부담감과 거부감이 들어 도망친다. 그리고서는 너무 풀어진다. 그럴 때는 나를 속여야 한다. 이거 해야지! 하면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기보다는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엔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슬쩍 일과 중 투두리스트에 적어두는 등 은밀하게 행동해야 한다. 정말로 안 적으면 기억을 못 해서 흐지부지 되거든. 스스로에게 어쩌라는 거냐고 말한다. 어쩌라고 진짜.
하고 싶은 게 많다면 당연히 체력을 길러야 한다. 운동? 막상 하면 열심히 한다. 그런데 사람 많을 걸 생각하고 미리 지쳐버린다. 진짜 다루기 어려운 개복치다. 어르고 달래서 '그래, 그래 가야지. 어구, 잘한다.'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뭐야 안 할래요.’가 된다. 그냥 가고 싶어 졌을 때 바로 움직여야 한다. 어 오늘 헬스장 가야지. 하고 그냥 걸으면 된다. 내가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지금 하고 싶은 걸 참는 건 무척이나 고역이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활 습관들을 컨트롤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성인 ADHD는 약을 안 먹으면 정도가 심해진다. 분명 밥을 먹었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심심하다고 뭘 먹고 결국 더부룩해진다던지. 무얼 사고 싶다던지. 이러니 어제도 웹소설 읽으면서 우느라 새벽 2시에 잔 것 같다. 그냥 좀 일찍 잤으면 좋겠다.
놀라운 점은 이게 많이 개선된 거다. 종종 게임하느라 기본 새벽 네다섯 시에 잠든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홀로 강행군을 펼쳤으니 다음날 좀비가 되어 출근한다. 좀비가 존재하는 세계관에 들어가도 내가 좀비인 줄 알고 안 물고 지나가게 생겼다.
어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작업실 겸 게임방을 구조를 바꾸고 오래된 물건을 꺼내서 버렸다. 밤 11시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올해가 가기 전에만 해야 할 일들을 메모장에 적은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행동했다. 당장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어질러져있는 방을 쓱 보고서는 순간 답답함을 느꼈는지 책상을 밀었다.
키보드를 책상 위치에 옮기고 책상을 간이베란다 문 쪽으로 밀었다. 기역 반대방향이던 두 위치를 기역자로 바꾼 거다. 방 중앙에 있던 키보드가 벽 쪽으로 붙으니 바닥이 드러나면서 방이 훤해졌다. 개운한 기분이었다. 물론 어질러져있는 물건들을 보고서는 바로 지쳐버렸다. 정리할 생각에 미리 지쳐버린 나는 그냥 핸드폰을 붙들다가 잠에 들었다. 화장도 지우지 않은 상태로.
어질러져 있는 상태를 무시하고 무시하다가 갑자기 손을 뻗어 냅다 무언가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상한 행동도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이렇게 벌여둔 일들은 나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이렇게 늘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면 좀 좋으련만. 해가 서쪽에서 뜰 법할 때나 한 번 움직인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아직 어질러져 있는 방이 있고 침대방 또한 어질러진 상태로 있다. 내 취미 용품들을 내 손으로 처분할 수 있을까가 의문인 욕심쟁이다. 나도 내가 욕심 없고 무던하고 평범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나에게 질리는 지수가 높아졌는지 나도 모르게 이번 병원 내원 때 울었다. 청승 떤 것 같아서 좀 부끄럽긴 하다.
내 나이에 절대 오지 않을 갱년기도 아니고 요즘 따라 슬픈 걸 보거나 들으면 눈물이 많아졌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나오지 않아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지금은 주책맞게 눈물이 많아졌다. 내 감정을 나도 예측할 수 없기에 나는 늘 나를 어르고 달랜다.
늘 육아하는 기분이다. 행동하는 나도 지치고 달래는 나도 지친다. 제발 내 말을 들으라고 소리쳐도 메롱 거리면서 도망 다니는 청개구리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방해하며 나를 툭툭 친다. 당연히 치는 사람도 나다. 이 간극이 영원히 메워지지 않는 걸까 두렵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죽상이더라도 버티는 거다. 덕분에 사람이 좀 비관적이다. 좀 긍정적으로 살아라.
나의 유토피아는 나 한 사람만 바뀌면 된다. 그날이 언제가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꼭 변화한 내가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부른 배를 부여잡고 폭식하고 싶은 나를 달래면서. 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