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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May 02. 2023

가운데 서는 것의 어려움

★ 어쩌다 외교관 ★


혼자 살 수 없어서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하는데 이게 쉬운듯 참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고 원하는 게 다 다르니 갈등은 반드시 생겨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남의 갈등 관계에 내가 어쩔수 없이 끼어서 난처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선초기 명재상이었던 황희가 어느날 시골길을 지나가다가 소 두마리를 데리고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그는 농부에게 두마리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곧장 대답을 하지 않고 밭가에 서 있는 황희에게로 애써 다가와 소리를 낮추어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한다고 귓속말을 합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이지만 일을 잘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누렁소가 마음이 상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 순간 학식이 높은 황희도 한낱 농부에게서 큰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소가 그러할진대,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황희의 여종 둘이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한 여종이 황희에게 와서 자신과 싸운 여종의 잘못을 고하며 비난을 하자 여종의 말을 들은 황희는 '네 말이 옳다' 하였습니다. 잠시후 다른 여종이 황희를 찾아와 조금 전의 여종과 똑같이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황희는 '네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두 여종에게 둘 다가 옳다고 말하는 것을 본 황희의 조카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이쪽도 옳다 하시고 저쪽도 옳다 하십니까? 시비를 가려주셔야지요."  황희는 조카에게 네 말도 옳다고 하였습니다. 


황희는 도량이 크고 품이 넓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념이 다르고 노선이 다른 자들을 적으로 간주해버리는 정치판에서 살면서 "당신 말도 옳고, 그대의 말도 맞소. 둘 다 틀리지 않소"식의 노선으로 조선시대 가장 오랜기간 정승의 자리를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 영의정 18년 삼정승을 모두 거쳐 도합 24년을 정승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정치8단을 넘어 교묘노련한 정치24단의 노회함으로 적(敵)이 없었을테니 마음도 편했던가 봅니다. 글쎄요. 속이 문드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쨌건 남자 평균수명이 40세를 넘지 못하던 시대에 황희정승께서는 88세의 수를 누렸습니다. 


자신의 하인에게 존경받는 사람은 드물다  
                                                          - 몽테뉴
                                             


한 집안의 어른이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던 분이라면 입장과 이념과 노선이 다른 두 사람의 갈등의 중간에 서게 되었을 때 지혜로운 중재자로서의 노력을 해야 옳을 것입니다. '둘 다 옳소' 입장을 취하게 되면 대립하는 당사자 둘의 갈등은 그대로 남게 되거나 더 심해지게 됩니다. 물론, 당사자 둘이 스스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좀체 일어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황희는 자신의 하인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주인이 될 용기를 가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 여종의 말을 듣고 시시비비를 가린 후 꾸지람을 하면 원성을 피할 수 없고 참으라고 하면 받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될 것이니 중간에 서게 된다는 것은 어려운 자리에 서게 되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難處'에 이르는 '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황희 정승의 처신을 교훈처럼 여기는 세상에 살게 되나 봅니다. 나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참 씁쓸합니다. 




사람은 천부인권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인(法人)은 일정한 사람의 집합인 사단, 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한 재산의 집합체인 재단에 살아있는 자연인과 같은 법인격을 부여합니다. 범위를 확대해보면 국가 또한 민족적, 지리적, 정치적인 이유로 세포가 한 사람의 몸을 이루듯 수천, 수억명의 사람들이 한몸을 이룬 인격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도 사람처럼 인격이 있어서 나라의 인격을 국격(國格)이라 하지 않습니까. 


국가도 사람처럼 두 나라간의 갈등의 중간에 서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경제, 군사 그리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얽히고 설켜서 국가간의 친소관계는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하고, 갈등 해결 과정은 지난하고, 해결에 걸리는 시간은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고 잘못되면 패싸움이 일어나기 쉽상입니다. 고대, 중세는 물론이고 근현대에 와서도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패싸움으로 온 인류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두 전쟁 당사국과의 여러가지 연관으로 세계 여러나라들이 둘로 갈라져 기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끼어서 반도국가로서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고초의 역사가 곧 우리의 역사였습니다. 수, 당나라의 침입, 몽고군의 침입, 정명가도를 명분으로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 교체기의 홍건적, 정묘년과 병자년의 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한국동란. 격동의 시기마다 중간에 낀 나라의 비애를 온몸으로 다 받아낸 슬픈 우리나라, 눈물의 우리선조님들이 밉지만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현재에도 강대국 중간에 끼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변국가와의  경제적 관계 그리고 군사적, 역사적 관계 사이에서 무게의 중심이 왔다갔다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총체적 난국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주변 강대국간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나라가 싸움터가 되었다는 사실에 두렵습니다. 일본과 명나라의 힘겨루기로 우리가 겪은 임진왜란, 명청교체기의 홍건적 침입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중국과 일본간의 청일전쟁, 러시아와 일본간의 러일전쟁, 미소간 냉전. 모두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성없는 글로벌 전쟁터 속에 살면서 우리는 내부적으로도 또 전쟁을 수행중입니다. 뉴스 시간이면 뉴스의 반 이상이 진영논리에 몰입하여 온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소식입니다. 과히 '짬짜면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이 이러하니 황희정승이 주는 씁쓸한 교훈을 잘 새겨서 살아가야 할 때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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