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숲을 지나 사람의 냄새를 맡다
가던 길 되돌아오면 가면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 있습니다. 등산 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헐떡이던 오르막길 단풍이 내려오면서는 더 고와 보입니다. 인생이란 가던 길 쭈욱 가는 길일까요? 생물학적인 몸의 시간은 그러합니다. 하지만 60고개를 넘어서면 가슴과 머리는 지난 시간의 기억을 더듬으며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를 시도합니다. 되돌아가지는 못해도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됩니다. 30고개에서 안보이던 게 보이고 못느끼던 것이 그제사 새롭게 다가옵니다. 반추(反芻)의 꼴:추(芻) 字는 두 손아귀에 풀(草)을 움켜 쥐고 있는 모양입니다. 반추는 소나 양 같은 되새김동물이 위 속의 음식물을 다시(反) 입으로 가져와 씹는 행위, 즉 '되새김질'을 의미합니다.
여러 종의 동물 가운데 이미 삼킨 먹이를 다시 입으로 꺼내어 씹는 동물이 반추동물이라면,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여 되새김하는 우리 인간은 모든 인종이 '호모 반추'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굳이 학술적인 명칭을 붙인다면 회상하는 인간(Homo Reminiscens), 성찰하는 인간(Homo Reflecticus), 그리고 되돌아보는 인간(Homo Retrospectus)쯤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호모 리플렉티쿠스 (Homo Reflecticus)가 가장 깊게 와 닿습니다. 30대 후반에 읽었던 소설 <태백산맥>을 30여년이 지나 다시 읽으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에 나 자신의 삶 속 경험을 투영해보며(Reflection)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이념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특히 여수ㆍ순천10.19 사건과 6.25전쟁 전후의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농민과 지주 계층의 충돌, 빨치산 활동과 토벌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민중의 삶과 그들이 겪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가 주 무대입니다.
소백산맥 줄기인 지리산 일대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가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지만, 문학에서 제목은 물리적 고증보다 주제 의식을 우선시할 때가 많으며, 실제로 작가는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의 모태이며, 그 줄기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즉, 전라남도 벌교의 이야기는 단지 전라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흐르는 한국 현대사의 전형적인 비극임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10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백두대간 태백산맥 준령을 넘는 산악 행군과 같습니다. 30대 후반에 넘었던 험준한 준령을 60대 후반에 들어 다시 넘었습니다. 머리로 넘었던 젊은 시절의 준령을 노년에 접어들어 가슴으로 다시 넘었습니다. 머리에 든 것을 꺼내어 가슴으로 되새김질을 한 것입니다.
30대 시절 첫번째 독서에서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이념의 대립을 보았다면, 60대에서는 그 격랑 속을 살아낸 사람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30대에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뭘했는지에 주목했다면 60대에서는 어떻게, 왜를 깊이 생각하며 준령을 넘고 넘으며 밑줄 긋고 책갈피를 꽂으며 소설 앞뒤를 넘나들었습니다. 30대에는 '누가 옳은가'를 가리려했었고, 60대에는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했습니다. '시대'에서 '삶'으로의 확장은 민족, 이념과 같은 거대 담론에서 개인의 일상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것입니다. 30대에는 '역사'를 배웠지만, 60대의 나는 '인생'을 읽어내고자 했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은 '역사'라는 거대한 숲을 보았고, 지금의 통찰은 그 숲의 나무 하나하나가 품은 '진액'을 느꼈습니다.
왜, 하필 전라남도였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조선 중기 이순신 장군께서는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라는 말로 수군을 폐하고 권율장군의 육군 휘하에 들어가라는 선조 임금의 영에 맞섰습니다.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음입니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생각이 그 바탕이었습니다. 호남평야에서 나는 쌀로 조선의 신민들이 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도는 비옥한 농토를 품은 땅입니다. 풍요로운 농토는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지주를 낳았고, 그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소작농의 피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소수의 지주를 위해 수많은 소작농이 죽을 고생을 해야했던 피눈물의 현장이었습니다. 논바닥 물은 소작농들의 눈물과 땀이었고, 가을 황금들판의 나락은 알알이 그들의 한(限)이었습니다.
땅이 많아서 한도 많은 땅 호남에서는 조선후기부터 민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함평 민란(1848), 임술농민봉기 (1862년), 동학농민운동 (1894년), 암태도 소작쟁의 (1923년) 등이 일어났고 호남지역의 저항정신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발하여 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29년)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시작점이기도 한 '여수ㆍ순천 10.19사건'과 그 때부터 시작된 빨치산투쟁도 그 바탕은 한많은 소작농들의 함성이었습니다.
되새김질에는 '공간'도 포함됩니다. 외서댁이 부황든 아이들을 위해 꼬막을 줍던 벌교 갯벌의 끈적임도 다시 준령을 넘게 만든 이유입니다. 산이 많은 작은 나라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소작농들의 벗어날 길 없는 신세는 갯벌의 뻘처럼 찐득했습니다. 빠져나오려 할수록 발을 더 깊이 붙잡는 갯벌처럼, 살면서 떨쳐내려 해도 결국 지고 가야 했던 인연이나 책임과 같은 삶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즐겨쓰는 말 중에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이란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나라, 권력자들이 백성들의 삶을 아무리 옭아매어도 그에 맞설 방법은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넓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표현방식입니다. 작은 나라에 살면서 송곳하나 꽂을 내 땅없는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사상과 이념, 그리고 정당성을 논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런들 저런들 배가 불러야 사람다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하늘에서 치는 번개도 끌어당기는 곳을 찾아가며 내리 꽂힙니다. 대대로 굶주리며 살아온 소작농민들에 공산당이 '인민'들에게 약속한 토지개혁 '무상몰수 무상분배' 는 번개만큼이나 강력한 흡인력을 가졌습니다. 배고픈 농민들에게 이보다 달콤한 약속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뻘밭에 빠진 한 발을 뽑아 앞으로 내디뎌도 역시 뻘밭에 빠진 발이 됩니다. 그렇다고 뻘밭에 서있을 수 없는 게 소작농들의 삶이었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살아가는 소설 속의 소작농들은 번개가 찾아들기에는 너무나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자식들의 입에 하얀 이밥이 들어가게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많은 소작농민들은 혁명의 깃발을 찾아 산맥의 능선을 탔습니다. 남정네가 산을 찾아 '산사람'이 되었을 때 그들의 아내와 누이들은 삶이라는 더 가파른 절벽을 기어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들의 총구 끝에 맺힌 '이념'을 보았으나, 60대의 나는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 남겨진 여인들의 굽은 등과 시린 발목이 더 크게 보입니다. 초로의 나이에 점점 엷어져 가는 나의 등과 시큰대는 발목 때문이라기 보다는 살아도살아도 허기지는 삶을 산 이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혁명의 엔진은 배고픔을 연료로 삼아 달립니다. 배고픔이 심할수록 엔진의 힘은 강해집니다.내 자식만큼은 굶기지 않겠다는 가장 처절하고도 순수한 생존 본능. 열악할수록 더 질겨지는 생존본능을 그들을 통해 보게 됩니다. 뜨거운 불꽃이 내는 빛으로 30대에 넘었던 <태백산맥>은 깊은 골짜기마다 흐느끼는 눈물이고, 그 갈등마저 품어 안은 넉넉한 흙의 품이었음을 절절히 느낍니다. 그때는 염상진의 서슬 퍼런 결기에 매료되었다면, 지금은 그가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의 시린 손마디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길을 되돌아오며 비로소 보게 된 '반추의 풍경'입니다.
외서댁은 소설 속에서 가장 처절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남편 강동식이 대의(大義)를 위해 산으로 갔다면, 외서댁은 생존이라는 더 험한 산을 홀로 넘어야 했습니다. 30대의 내 눈에는 그녀가 흘린 눈물의 색깔만 보였으나, 60의 길목에서 다시 보니 그 눈물이 마르고 말라 마른 자리에 맺힌 단단한 소금 결정 같은 강인함을 보았습니다. 30대에 만났던 외서댁이 '역사의 희생양'이었다면, 30여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외서댁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입니다. 발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갯벌이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듯 그녀도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문질러가며 버텼습니다. 30대의 나는 그녀가 당한 치욕에 분노했지만, 이제는 그 치욕조차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꺼이 감내한 숭고한 인내였음을 알게 됩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삼켰던 그 비릿한 슬픔의 맛을 이제야 나도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의 펠라게야 닐로브나는 처음에는 남편의 폭력과 가난에 길들여진, 두려움에 떠는 전형적인 구시대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성장한 후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아들 파벨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그녀는 단순히 '내 자식'을 지키는 어머니를 넘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민중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적 어머니로 거듭납니다. 고리키의 '어머니'가 뿜는 뜨거운 이스크라(불꽃)가 아니라 산으로 들어가 총을 든 외서댁에게서는 끝까지 어머니와 누이의 아늑함을 느낍니다.
혁명을 위해 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 염상진, 하대치, 들몰댁, 외서댁, 무당 소화, 남양댁, 죽산댁, 강동식, 강동기, 조원제, 천점바구, 솥뚜껑, 이태식. 마삼수, 노덕보, 김복동, 김종연. 이들은 모두 숯장수 아들, 소작농, 머슴이거나 그들의 아내들입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절절한 사연을 품지 않은 이 없지만, 칠십고개를 목전에 두고 삶을 반추하는 이 시점에 '염상구'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주목을 하게 됩니다. 비열하고 거칠지만, 벌교 갯벌의 짠내를 온몸으로 뒤집어쓴 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는 생존을 위한 비겁함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가장 세속적이고도 지독한 야생의 인간이었습니다. 형 염상진이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염상구는 내일의 밥그릇과 오늘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밑바닥까지 내던질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그를 이해한다는 것과 그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이 생존위협에 맞서는 정당방위로 몰아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를 그렇게 '괴물'로 만든 원인이 뭔지, 또 한 인간의 괴물적 행위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더 나아가 이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했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주 집안의 아들로서 혁명가가 된 정하섭에 대한 무당 소화의 사랑은 스토르게(Storge)와 에로스(Eros)를 넘나드는 운명적 사랑입니다. 외로운 빨치산 정하섭을 어머니가 자식을 그리워하듯 애타게 기다리며 헌신적으로 자신의 삶을 온 몸을 바쳐 사랑합니다. 정작 본인들은 그들이 서(庶)고모와 조카 사이라는 것을 끝내 알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있던 소화의 어머니인 무당 월녀는 그들의 사이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중풍으로 말을 못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려했으나 방법이 없는 채, 누운 자리에서 용을 쓰다가 쓰다가 그냥 먼길 떠나버렸습니다. 30대의 눈에는 이들의 사랑이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로 보였지만, 60의 고개에서 반추하는 이들의 사랑은 '운명을 거스르는 등불 하나' 같았습니다. 그것은 이념의 서슬 퍼런 칼날도 베지 못한 인간 본연의 '온기'였습니다.
소화에게 사랑은 곧 기다림이었습니다. 소화는 빨치산 정하섭이 남기고 간 짧은 온기를 가슴속에 넣고, 소가 여물을 되새기듯 매일 밤 그 기억을 꺼내어 씹으며 견뎠을 것입니다. 30대의 나는 정하섭의 혁명 구호에 귀를 기울였지만, 지금의 나는 소화가 정하섭의 발소리를 기다리며 죽인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30대에서의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소화의 끝도 없는 그 기다림을 답답하게 여겼을 것 같습니다만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을 오롯이 비워두는 그 마음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비로소 보입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야 더 고와 보이는 단풍처럼, 호모 리플렉티쿠스 (Homo Reflecticus)로서의 시간을 갖는 나에게 소화의 사랑 또한 비로소 그 붉고 절절한 속살을 내게 보여줍니다.
소설가 특히 대하소설을 쓴 작가는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등장인물을 태어나게 하고 각자가 부여받은 희로애락의 삶을 살다가 사라지게 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거미줄같은 인연으로 얽히고 섥히어 살다가 죽음으로 인연의 실타래를 놓습니다. 토벌대 사령관 심재모에게 지고지순의 사랑을 바쳤던 순덕은 어떻게 되었을까. 악질 정치인 최익승은 살아남아서 정치적 목숨을 이어갔을까. 하대치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던 장터댁은 하대치를 만나게 될까. 소설가가 마무리하지 못한 인연의 실타래는 나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들몰댁의 남편 하대치는 소설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빨치산 하대치와 부하들이 빨치산 대장 염상진의 무덤을 찾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산줄기만은 어둠 속에서도 그 윤곽을 어렴풋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어렴풋한 윤곽 속에서도 산줄기는 장중한 무게와 굳센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억센 산줄기의 봉우리 봉우리 에서 봉화들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봉화들은 너울너울 불길을 일으켜 어둠을 사르며 줄기줄기 뻗어나간 산줄기들을 따라 끝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불꽃들과 함께 함성이 울려오고 있었다.
빨치산들은 토벌대가 쏜 총탄에 그들을 품어주던 산하에 선혈을 뿌리고 허망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허망했던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 민족의 역사에 엄연히 살아있는 숨결입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등산로를 내려오며 비로소 고운 단풍을 보듯, 나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야 비로소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민낯을 마주하게 됩니다. E.H. 카의 말대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이 과정 속에서, 30년 전의 나도, 소설 속 염상진도, 염상구도, 외서댁도, 소화도 그리고 60대의 나도 함께 손을 맞잡습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오늘 다시 써 내려가는 '나만의 역사'입니다.
날것의 기록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덧입혀진 새로운 이야기로 말입니다.
제 2부 예고
<태백산맥>속에 나타난 편파적 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