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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Apr 16. 2023

나는 아내 몰래 결혼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MG

결혼은 두 남녀가 가정을 꾸리는 의식이자 절차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행위이다. 혼인신고와 재산 그리고 자녀양육문제로 법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내 모르게 한 번 더 결혼을 한 적이 있다. 본처와의 결혼생활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시간은 서로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다. 각자의 직장, 출장, 여행 등으로. 하지만 나의 또 다른 아내와는 24시간 내내 떨어져 있어본 적이 별로 없는 그야말로 일심일체의 부부이다. 이보다 더 한 찰떡궁합은 없다. 아내가 장기간 집을 비우면 나는 그녀에게 더욱 더 밀착한다. 주변에서 헤어지라고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난 사랑에 함부로 배신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주변인들이여~~ 우리는 로미오 줄리엣입니다. 죽음도 우리를 떼어놓지 못할 것이오.' 때로는 주변에서 절대 헤어져서는 안된다고 응원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스스로 이별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소서'


그녀는 새벽 네시쯤이면 콧소리로 나를 불러 깨운다. 피곤해서 더 자고 싶은 날에도 이렇게 보챈다. 짜증이 일 때도 있지만 어쩌랴 그녀는 내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는 내 아내인 것을. 날 깨우는 것으로 그만하면 좋으련만 이번엔 다리로 내 다리를 툭툭 친다. 졸린 하품을 하악~~하며 왜~~ 하고 물으면 밤새 다문 입에서 냄새가 나니 양치를 하고 찬물 한 사발 들이켜고 오란다. 아니 이러면 잠 다 깨버리는데. 찬물 한사발에 잠이 깼으면 이제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든지 책상 앞에 앉든지 하란다. TV를 켜거나 소파에 앉아 잠을 청해서는 안된단다.


그녀의 이름은 Ms. Morning Glory.




국민학교 음악 시간에 '♬새나라의 어린이'라는 노래를 불렀었다.

1.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2.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장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3. 새나라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합니다.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4. 새나라의 어린이는 쌈을 하지 않습니다. 정답게들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5.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남을 도와주는 배려심, 거짓말을 안하는 정직성, 화목하게 잘 지내는 협동심, 건강. 이런 것 보다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더 가치있기 때문에 동요 1절부터 일찍자고 일찍일어나기를 강조하나 보다.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는 학교 갈 준비도 스스로 하고 준비물을 빠뜨리는 일 없고 숙제도 잘 해가니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덩달아 자존감 높아지고. 늦게 일어난 어린이는 시간이 없어서 아침밥도 대충, 세수도 하는둥마는둥, 뭐든지 허둥대다보니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많이 듣게된다. 알게모르게 늘 불안한 상태로 자라게 된다. 물론 고치면 되지만 습관은 일종의 마약과 같다. 자기가 원해서 좋아서 들인 행동방식인데 쉽게 바뀔 리 없다.



루소는 말했다. "어린이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지, 무엇이라고 손에 넣을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자녀교육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도 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평생토록 고기를 먹이려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좋은 습관을 들이도록 인도하는 부모에게서 자녀교육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부모님께서는 살아 생전에 늘 동트기전에 일어나셔서 시골집 마당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아주 이른 하루를 시작하셨다. 유난히 부지런하셨던 두 분은 자손들에게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서도 나름의 선망의 대상으로 사시다가 가셨다. 두 분이 새벽마다 나누는 대화와 일상의 소리가 유난히 잠귀가 밝았던 나를 아침마다 깨웠다. 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서서히 아침 잠이 사라지게 했다. 그전에는 그렇게도 오던 아침 잠이 고등학교를 입학했을 때쯤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니 전날 밤 일찍 잠이 들 수 있었고 그랬으니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장기에는 비평가보다는 본보기를 더 필요로 하는 법인데, 평생토록 지켜온 좋은 습관을 갖게 해준 내 부모께서는 내가 처음 만난 최고의 스승이셨다.


얼리버드로서의 일상이 건강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 습관때문에 '사회성 결여(?)'의 문제도 있었다. 원래 체질적으로 술을 못마시지만 '건배'를 외치며 늦게까지 앉아있질 못했고, 멀리 여행을 가서도 야경구경, 잠자리에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꽃 이런 경험도 별로 없다. 남들이 자는 신새벽에 일어나 부스럭거리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환영받지 못하는 인사가 되어버렸다. 늘 별로 재미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살더라도 가끔 한번쯤은 일탈의 삶을 살아도 괜찮을 법한데 이게 왜 이리도 어려운지.


아무튼, 부모님 덕분에 나도 좋은 습관을 이른 나이에 들여서 평생 잘 살고 있다.




영국의 작가 메러디즈는 '40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버린다.'라고 했다. 나는 갓 17살에 조혼을 한 셈이다. 사회성 결여의 폐단도 있었지만, 얻은 것은 더 많았다. '미러클모닝(miracle morning)'이라는 신조어도 있다는데 난 그런 건 잘 모른다. 단지 일찍 일어나서 건강에 좋고 남보다 더 긴 시간의 하루를 살아서 좋다. 그런 하루가 miraculous day (기적같은 하루)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 '큰일'을 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큰일'이란 남들과 비교해서 큰 일이 아니다. 애시당초 그럴만한 재주는 아예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갖지 못했을 때의 가상의 나와 일찍 일어나는 습관으로 산 현재의 나를 비교해보았을 때의 '큰일'이다.


젊었을 때에는 새벽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건강을 다져왔고, 낮시간이 자유로운 지금은 운동은 낮시간으로 미루고 새벽이 선물로 주는 고요함 속에서 주로 읽고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이들수록 7시간 이상의 수면이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즐겁지 못한 일과를 보내고 난 뒤, 잠자리에서의 7시간은 품질은 떨어지고 양만 채운 불량품이다. 수고로운 하루에서 자신만의 보람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저문 하루가 보답으로 받은 숙면만이 개운한 아침을 선물로 주지 않겠는가.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고 했다. 결국 습관은 운명도 바꾼다는 알고리즘이다.  


이말을 되뇌이며 큰 기지개로 하루를 연다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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