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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Apr 23. 2023

드라마 <퀸메이커> 서민정
박수칠 때 떠났어야지

죽지 않고 버티다가 암세포 !


로마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변방에 비치는 제국의 빛줄기가 약해질 때쯤 로마는 휘청거렸다. 반란이 잦았고, 북방세력이 남하하여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내 몸 세포가 가진 면역력으로 침입한 바이러스를 물리쳐야 하는데 로마는 그럴 힘을 상실했다. 이민족인 게르만족 용병으로 침입자 훈족을 물리치려던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뜻)전략전술의 실패로 로마는 무너졌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중국의 마오쩌둥의 홍군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군의 토벌 작전을 피해 18개의 산맥을 넘는 368일간의 긴 행군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초석이 되는 '대장정(大長程,멀고먼 길을 감)'을 한 것이다. 이후 부패한 국민당군을 상대로 싸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중국은 우리나라 면적의 100배가 되는 거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이다. 아무리 절대권력자 마오의 명령일지라도 산넘고 물건너 신속정확하게 전달되기란 어려웠다. 사막을 건너다 모래먼지처럼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대륙의 지도자가 된 그는 자신이 내린 교시(敎示, 길잡이로 삼는 가르침)가 대륙의 후미진 곳까지 제대로 먹히길 바라며 '월인천강'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하나된 중국이 되기를 원했다. 하늘에 뜬 달이 강과 호수에 그 모양 그대로 비치듯이 자신의 명령과 교시가 신속정확하게 방방곡곡의 도시와 마을에 전달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대제국을 이룬 황제들과 권력자들은 자국 뿐 아니라 제국에 속한 속국에 까지 통용되는 법으로 제국을 일사분란하게 통치하기를 원했다. 강력한 군대와 폭압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법전 편찬 뿐 아니라 도량형 통일, 언어 통일, 종교 통일까지 시도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였던 우리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면서 민족의 혼 말살 정책을 펼친 일본도 그런 저의를 품고 있었다. 




사람 몸의 생물적, 생리적 현상도 거대제국을 다스림과 다르지 않다. 인구 대국인 중국의 인구가 14억이라지만 약 200종의 세포가 총 40조 개나 되는 인체에 비하면 중국도 소국이다. 뇌의 명령에 따라 세포들로 구성된 사지와 장기들이 일사분란하게 잘 움직여야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이 이루어진다.  제국에는 권력을 탐하는 세력이 있고 불만을 품은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뇌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장기와 세포들이 있다. 이 반란군이 바로 암세포이다. 제대로 진압하고 도려내면 제국의 역사는 이어지지만 반란군에 지게되면 멸망하게 되듯이, 인체도 암세포에 지게되면 생명의 기운을 잃어버리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우리 몸 대부분의 세포는 종류마다 정해진 수명을 가지고 있다. 위의 점막 세포는 약 3일, 피부의 상피 세포는 약 30일, 성인의 뼈세포는 약 2년 반이다. 최장 7년의 수명을 가진 세포가 마지막으로 교체되면 인체는 7년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7년마다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셈이다. 


태아의 손은 형성 초기에는 오리의 발처럼 손가락들이 붙어 있었다. 어느 순간에 손가락과 손가락을 잇던 세포들이 스스로 죽어 다섯 손가락의 구분이 분명한 형태가 된다. 손이 사람의 손처럼 되기위해서는 이 세포들의 '자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오리의 단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태아의 꼬리도 마찬가지다. 태아의 꼬리는 스스로 소멸하여 꼬리가 없는 인간의 척추를 형성하게 되어 꼬리 달린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세포가 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necrosis(괴사)가 타살이라면 apoptosis(포자멸사)는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세포가 무조건 안죽어야 좋은 게 아니다. 수명이 다한 세포는 죽어야 하는데 세포가 안죽고 버티다보면 암세포가 된다. 위장의 상피세포는 끊임없이 apoptosis 하여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야 한다. apoptosis 해야할 세포가 소멸하지 않으면 위암, 대장암세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모름지기 국가지도자는 민주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그 권력을 국가발전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욕에 빠져서 '민심은 천심이다'란 뜻을 가슴에 새기지 못하고 권력유지를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다가 몰락한 권력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정치세계도 다르지 않다.  3선의원, 4선의원, 5선의원인 것이 반드시 능력있는 정치인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지지율에 목숨을 건 정치인도 많지 않은가.


직장에서도 은퇴라는 정해진 질서를 잘 지켜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젊은 일꾼들이 necrosis당하는 일이 있어도 문제이지만 은퇴시기를 넘어서 apoptosis를 거부하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전문적 지식과 오랜 기간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와 노쇠한 기력으로 자리보전을 목표로 버티는 일은 조직을 병들게 하는 악행이라고 할 수 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 (生卽必死 死卽必生)

살고자 하여 죽지않고 버티는 세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전체를 반드시 죽게 만든다

때를 알고 스스로 소멸하는 세포는 전체를 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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