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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Apr 26. 2023

선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To Be or To Choose. That is Question.


운전을 하다가 정지신호를 보게 되면 차를 멈춘다. 무덤덤히 기다리다가 출발신호에 따라 출발한다. 그러나, 진행방향의 도로가 두 갈래 이상으로 갈라지면 '무덤덤히'가 안된다. 네거리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진행할 방향에 따라 어느 차선으로 진입할 것인지를 선택해서 직진, 좌회전, 우회전 진행을 하면 된다. 네거리는 직관적이니까.


그러나 오거리 교차로를 만나면 상황이 확 달라진다. 네거리와 오거리의 차이는 진행방향 선택이 3지선다형에서 4지선다형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방향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즉각적인 판단의 난도가 훨씬 높아진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오거리를 만나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하기 쉽상이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를 표현하는 '시골사람 도시 와서 오거리 만난듯하다'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삼거리와 네거리의 차이 보다 네거리와 오거리의 차이는 한 개가 늘었다는 차이가 아닌 것이다. 네거리와 오거리 사이에는 '임계점(the critical point)'이라는 구분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결정'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선택지에 대한 결정이다. 일거수일투족을 할 때마다 선택이다. 오늘은 뭘 하지? 영화관람 아니면 여행. 그도 아니면 데이트? 영화관람이라면 어떤 영화, 어느 극장, 누구와? 여행이라면 어디로, 숙소는? 결혼해 말어? 한다면 어떤 스타일? 선택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인간사 기-승-전-결이 모두 선택-선택-선택-선택으로 이어진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출생선택 권한없이 이 세상에 '피투적 존재'로 그냥 던져짐을 당했으므로 실존의 이유를 찾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부모의 결정이든 실수이든 나의 태어남은 나의 결정 나의 실수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우리는 삶을 구성해 나가는 존재이고,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인간이 겪는 불안은 선택지의 부족 아니면 선택지의 과다함에서 야기되는 불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상 인구가 60억이면 60억명의 철학자가 있는 것이고 70억이면 70억명의 철학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행복한 철학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다.




하기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적 방법으로 태어난 존재이다.


이제껏, 정자와 난자의 수정은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의 미녀 페넬로페의 선택방식이라고 생각해왔다.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자 남편인 오디시우스(율리시즈)의 을 쏠 수 있는 강한 남자만이 자신에게 구혼을 할 수 있다고 페넬로페가 선언을 하였듯이 난자는 기세좋게 자신에게로 빨리 헤엄쳐 온 정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았다. 남자의 정액 속의 정자 3억 개 중 가장 빠른 정자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난자에 입성하여 수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164451823867636968/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는 수백 개쯤 되는 정자들이 난자의 주위에 거의 동시에 도착하는데, 거기에서 정자들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구애의 교태를 부리고 있으면, 난자는 수백의 구혼자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출생은 인간이기 이전부터 어두운 동굴에서 홍보전쟁과 선택-결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난자의 선택-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수백 구혼자들의 이력서와 건강진단서를 모두 검토한 것일까? 과학자들의 답은 '난자는 자신과 가장 다른 유전적 특성을 보이는 정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근친 결합으로 인한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보인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과 선택당함의 운명 속에서 태어난 우리이니 살아가는 내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가보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명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떠오른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두 길 중 한 길을 선택해야 할 삼거리를 만났다. 더 나은 길이라고 선택해서 한 길로 나아갔지만 가지 않은 길이 끝까지 발목을 잡는다. '다른 길로 갔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시인은 삼거리 길이 아니라 오거리 길에 서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질려서 발걸음을 돌렸을까? 아예 시를 쓰기를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거리 교차로에서 어느 방향의 길로 진행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듯이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하고 결정해야 했다. 다른 작가분들도 그랬을 것이고, 글을 읽는 분들은 어느 글을 읽을까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선택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목숨을 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느냐 선택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To Choose. That is Question.




방법은 없다. 

최선을 다해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되도록이면 후회와 미련을 갖지말자고 다짐하는 수 밖에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직립해서 두발로 걸을 것인가, 네발로 기어다닐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듯이 매사를 선택하고, 인간으로서 네발로 기어다니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만족하듯이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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