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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n 17. 2023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어떠세요?

■ 존재가 인식을 규정한다 ■


밤 시간 도심공원. 한 무리의 중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높습니다. 주위를 힐끗거리면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있습니다. 간간이 상스런 말도 들립니다. 이런 시간이면 저 나이의 청소년은 대부분 집 아니면 학원에 있을 시간입니다. 늦은 시간에 공원에 모여 노는 모습이 어째 불안 불안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의 모습과 공원에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집에서는 예의 바른 아들 딸이자 자신의 본분을 아는 모범생이지만 공원에서의 무리 속에서 자신이 갖는 페르소나는 따로 있습니다. 무리의 형성동기와 무리의 분위기에 따라 모범생이 문제아로 변신하여 무리의 인정받으려 애를 씁니다.   

             

청소년들만 그럴까요.  

              

남자들은 군대를 제대하면 일정기간 예비군에 편성됩니다. 소집명령이 내려지면 지정된 장소에 모여 군사훈련과 정신교육을 받게 됩니다. 현역일 때는 단정한 복장에 바른 자세로 보행하던 군인이 예비군이 되면 모자는 뒷주머니에 꽂고 군화끈은 너덜너덜한 상태로 입수보행을 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들도 대부분 직장에서의 모습과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의 모습이 다릅니다. 직장에 근무 중이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조직의 일원으로 그에 부합하는 언행을 갖게 합니다만 예비군이라는 존재 인식은 그로 하여금 군이라는 거대조직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군인과 정반대의 모습을 연출해 내게 되나 봅니다.                          



산소(O)와 수소(H)는 모두 무색 무미 무취의 불이 잘 붙는 가연성 물질입니다. 그런데 두 물질이 결합하면 정반대의 성질 즉 불을 끄는 물(H2O)이 됩니다.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할 때와 두 원소가 합해져 물의 일원이 되었을 때의 성질은 정반대가 됩니다.      


세상은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 화학적 세계에서의 이합집산에 따른 현상이 인간사에서도 일어납니다. 합리와 이성을 중시하던 철학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를 자랑하는 원칙의 나라 독일인들은 왜 히틀러 광신도가 되어 유태인 학살에 동조하였을까요? 인류애의 따뜻한 불꽃을 지필 수 있는 이성적인 독일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나치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이성을 상실하고 인류애의 불을 끄는 물살을 이루었는지 의문입니다. 물결 속에서의 그들의 존재가 그들 뇌의 인식체계를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왜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는 증폭의 힘이 강할까요? 때와 장소에 따른 존재에 대한 인식이 그 사람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말은 주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걸맞은 품위를 갖추게 된다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정적 의미도 역시 성립이 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연구를 하던 필립 짐바도르는 한 가지 실험을 하게 됩니다. 연구에 참가한 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감옥의 교도관 역할을 그리고 또 한 그룹에게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 역할을 담당하게 했습니다. 2주간 예정으로 진행된 실험이었지만 불과 6일 만에 실험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도관 역할을 맡은 그룹은 점점 가학적, 학대적 면이 강해지고 죄수 역할을 맡은 그룹에서는 소극적이고 복종적으로 변하면서 극도의 신경쇠약과 정신불안 증세를 보였습니다. 과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는 대성공(?)을 이룬 셈입니다. 루시퍼 효과란 심리학 용어의 유래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일원'이 됩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자라다가 대문을 나서면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동네 마트를 가게 되고 이웃 아이와 같이 놀면서 동네 아이로서 동네 일원이 되고, 학생으로서 학교의 일원이 되고, 직업을 가지면서 직장의 일원이 되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사랑을 시작하면서 '두 사람만의 세상' 일원이 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존재'라는 자리를 갖습니다.     

           

자리는 의무인 동시에 권리입니다. 갓난아기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와 가족의 기쁨이 될 의무를 동시에 갖습니다. 학생은 배울 권리와 배워야 할 의무를 동시에 갖습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할 때 사랑도 안정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연인은 서로 에로스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서로에게 충실할 때 연인의 자격을 갖습니다.       

         

누가 모르나요. 중요한 것은 나의 존재 즉 나의 자리를 내가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분을 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분을 망각하면 나의 존재가 정체성을 잃습니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의심한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면 자신이 태어난 조건자신의 인식을 규정한다는 사실에 반감을 갖거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성이란 '의심' 그리고 '의문'과 동의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조건에 반응할 뿐이다." 귀스타브 르봉의 말입니다. 파블로프의 실험에 등장하는 개는 먹이를 줄 것임을 예고하는 종소리에 미리 침을 흘립니다. 인간도 오로지 조건에 반응하는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존재가 인식을 규정'하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혈액형, 피부색이 나의 존재일 수는 있지만 나의 생각마저 '존재'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나는 진정한 이성적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생존 본능이 강합니다. 생물이라면 생존 본능이 다 있지만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이므로 더욱 강한 생존 본능을 보입니다.


군중심리도 그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죽는다는 생각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무리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주 무지하거나 매우 용기가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을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지성인들은 시대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보편적 무리를 뛰어넘은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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