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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Jun 12. 2023

엎드려 듣는 초원 음악감상실

오늘도 겸허하게 풀을 눈높이에 두고 풀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엎드려 두어시간 일하다보면 풀을 감아쥐는데 필요한 악력으로 그리고 두팔 중 하나로 땅을 짚은 상태로 풀을 뽑으니 손아귀 팔 어깨 그리고 복근에 피로를 느낍니다. 이맘쯤이면 얼음물 한 잔 그리고 유튜브 음악이 절실합니다. 7080가요와 팝송이 제일 편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켈트 그리고 앵글로색슨 민요들이 마음으로 마시는 한잔의 캐모마일차가 되어줍니다. 


7080노래는 내 젊은 시절을 담아둔 타임캡슐입니다. 노래를 듣다보면 나는 40여년전 옛날로 돌아가 있고 봉인된 마개를 열면 나의 10대 후반과 2,30대의 추억이 뚜껑 열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그때 그대로가 아니라 4,50년 세월을 거치면서 추억들이 잘 곰삭아있습니다. 땅에 묻은 독안에 든 살얼음 김장 김치가 주는 똑쏘는 맛처럼 추억의 배추가 세월을 양념으로 잘 버무려져 맛있게 익었습니다.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서 친구와 장난치고 문학을 얘기하고 함께 음악을 듣고 취업을 고민하던 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아 ~~ 옛날이여~~


줄리 런던의 노래 'Fly me to the Moon' 의 가사처럼 내 가슴을 노래로 채우면 그 노래가 나를 달, 화성, 목성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튜브 음악을 들으며 나의 옛시절로 돌아갔다가 해질녘쯤에 'Back to the Future' 할 참입니다.  




조용필 가수의 <친구>를 듣습니다. 

♬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갔나 그리운 친구여~~ 이렇게 시작하는 조용필 가수의 <친구>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하늘 만큼 높았던 꿈은 아직도 꿈꾸는 중이고 숱많던 머리는 숱하게 많은 추억을 남겨놓고 이제는 희끗희끗합니다. 


사상적 이데올로기 탓에 지금은 거의 사라진 '동무'라는 말이 주는 원래의 뜻과 어감이 참 그립습니다. '어깨동무'라는 말은 사람이 아니라 자세를 표현하는 추상적 단어입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이의 인간관계는 거의 없습니다. 계급이란 깡패가 행패를 부리는 탓입니다. 사고무친(四顧無親)한 강호(江湖)에 나와보니 외롭고 살벌합니다. 동창회는 타임머신을 타고 어깨동무를 만나러 갈 수 있는 티켓입니다. 60대 70대를 넘긴 나이에도 까마득한 옛날에 교실에서 부른던 이름을 그대로 철수야~~ 영희야~~로 부를 수 있고, 이름 뒤에  '임마'와 '지지배'를 붙여가며 더 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싶어집니다.  


7080노래에는 최루가스도 조금 묻어있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 마다 맺힌 ~~ 으로 시작하는 양희은 가수의 <아침이슬>은 1970,80년대를 대변하는 저항성 민중가요의 대명사입니다. 김민기 작곡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대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기폭제 노릇을 한 것입니다. 노동과 위험을 줄이고자 광산 개발용도로 발명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살상무기로 사용되었듯이 말입니다. 여성치마용 섬유로 개발된 천이 때밀이 도구인 '이태리타월'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미국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베레비는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한 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패가 되고 나서 비슷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면서 똑같은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서 똑같은 창: 동창(同窓)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즘에는 프레임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같은 시각, 같은 프레임을 가지면서 비슷한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들이 됩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가리고서 어깨동무한 채로 최루가스 자욱한 데서 매운 코로 공기를 들이키고 매운 입으로 캑캑거리며 똑같이 <아침이슬>을 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한 시대를 살아내고 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비슷한 패러다임을 가진 같은 정서를 가진 7080세대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시대 노래를 들으면 그 시대가 통째로 소환되는 것이지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민요들도 좋아합니다. 인기 드라마였던 <미스터 션사인>의 OST로 잘 알려진 '그린 슬리브즈'는 잉글랜드 지방의 민요입니다. 우리에게 '아 목동아'로 알려진 '런던데리 에어'는 북아일랜드 전통민요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국의 북부 지방 스코틀랜드는 산악지대인 우리 한반도의 지형과 흡사해서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민요들이 우리에게도 신토불이적인 정서적 동질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면 전세계가 듣게 되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랭사인'은 작곡가 안익태의 '애국가'가 지어지기 전까지 우리의 국가를 대신할 정도였습니다. '애니로리'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경상남도 통영은 유난희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고장입니다.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미술가 전혁림 등이 모두 유년시절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통영항을 바라보며 에술적 감수성을 키운 분들입니다. '신토불이 (身土不二)'는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자신이 사는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입니다. 몸과 땅만 둘이 아닌 게 아니라 영혼과 땅도 둘이 아니라 하나인가 봅니다.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 자연환경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예술적 재능을 부여하니까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해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가는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
역사가는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


역사가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사실을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를 재조명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단순한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상황이 이러하므로 이 상황의 원인이었던 과거는 이러했을 것이다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상식적으로는 과거는 '기억 대상'이고 미래는 '상상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E.H.카에게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과거는 상상의 대상이고 미래는 기억의 대상이었던 겁니다.  


7080 음악이 과거를 불러낸다면 그 과거는 음악을 듣는 사람의 '현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내 나이 50세로 듣는 7080 노래가 다르고, 내 나이 60세로 듣는 7080 노래가 다릅니다. 나의 처지와 건강과 마음에 따라 내가 70, 80세가 되어 듣는 노래 '친구', '아침이슬'이 또 다른 노래가 될 예정입니다.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조영남 가수가 '모란동백'을 부르고 있습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이 대목에서 진짜 산에서 완전 생생한 자연음향으로 뻐꾸기가 울어줍니다.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파라~~ 로 울고넘는 박달재를 넘더니, 모란아가씨에게 ♬나를 잊지 말아요~~하고 숨이 넘어갑니다. 노래 들으며 상념에 빠져 일을 잘 마치는가 했는데 모란동백이 끝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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