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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Aug 05. 2023

여자가 무섭다

무서운 것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약진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과학적으로 납득할만한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여성의 성염색체는 X염색체 두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성의 성염색체는 X와 Y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은 같은 유전자가 둘이어서 하나가 탈이 나면 다른 하나로 대체가능하지만 남성은 하나가 탈이 나면 대체할 게 없어서 유전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남녀 간 평균수명을 보아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긴 수명을 갖는 나라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또 다른 이유를 찾기는 사실 어려운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여건과 문화적인 면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시도와 연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자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므로 바깥 활동을 하면서 술과 담배에 빠지고 사고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여자보다 수명이 짧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자유로운 유아기의 사망률을 보아도 여아보다 남아의 사망률이 더 높습니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은 동물로서 지능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은 인간과 함께 영장류에 속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처럼 술이나 담배를 즐기지 않고  수컷으로서 노동이나 전쟁 등으로 수명을 단축시킬만한 위험에 접하지 않지만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더 깁니다. 사회문화적인 이유를 찾으려다 다시 생물학적인 이유로 돌아가게 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면 여자는 분명 남자보다 강합니다.


서던 덴마크대학의 역학(疫學) 전공 교수인 버지니아 자룰리 박사는 지난 8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근(飢饉)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생존력이 더 강했다"라고 밝혔다.

기근이나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남녀 수명 차이가 대부분 유아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후천적 직업이나 행동 차이보다는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가 수명 차이를 불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성(性) 호르몬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인체의 면역 기능을 강화해 감염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포에 손상을 주는 산화작용도 막는 효과가 있다. 동물실험에서 에스트로겐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암컷들은 오래 살지 못했다.  

반대로 남성호르몬은 남성의 수명을 줄인다. 가축에서 거세된 수컷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그 방증이다. 2012년 국내 연구진은 사람에서도 같은 효과를 확인했다. 조선시대 환관(宦官·내시)과 양반의 족보를 비교한 결과, 양반의 평균수명은 51~56세였지만 환관은 평균 70세까지 살았다.

-- 중략 --

                                    - 조선일보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2018.01.23



 

과학적 견지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도록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사회적 동물로서의 우리는 여전히 사회문화적 이유를 찾아보기를 즐깁니다. 죽기 살기로 덤비면 못 이겨낼 게 없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죽어도 좋다 덤벼라 하고 배를 훌렁 까고 덤비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주눅이 들게 마련입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인데 목숨을 내놓고 덤벼드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죽지 않으려고 살을 뺍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어도 좋으니 살을 빼겠다고 합니다. 체중을 줄이려는 목적이 남녀 간에 분명히 다릅니다. 남자는 건강을 위해 여자는 미용을 위해 살을 뺍니다. 살을 빼다가 죽어도 좋다고 나서는 여자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여자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제대로 수행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유교사회에서 여자의 최고 미덕은 자녀를 많이 낳아 가문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많이 낳아 가문의 대를 잇게 하지 못하는 아내는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를 저지른 게 되어 내쫓김을 당했습니다.  '남녀평등'의 시대를 지나 '양성평등'의 시대인 지금 여성의 권위는 남성의 권위에 비해 모자람이 전혀 없습니다. 칠거지악 시대의 구렁에서 벗어나 단기간에 엄청난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세기 한국사회의 최대 문제는 저출산 문제일 것입니다. 최단기간에 세계 최저출산국가가 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예전의 출산율을 회복하기는커녕 출산율이 상승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높은 자녀 교육비, 돌봄시설의 부족으로 인한 자녀양육 문제 등으로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게 매우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다산과 가문의 번성의 '운명적 임무'가 주는 억압과 부담과 불안과 불만의 압력이 압력밥솥의 내압력이 꼭지를 돌게 하듯 엄청나게 높았을 것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내압력을 가진 뜨거운 증기가 다 빠질 때까지는 해결되지 못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처지에 누가 출산을 다그칠 수 있겠습니까. 




유년시절의 초등학교 교실을 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체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이 빠릅니다. 학급의 주도권을 여자아이들이 쥐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근육이 발달하고 키가 커진 남자아이들의 체격이 더 좋아지면서 양상이 달라지는 듯 하지만, 중장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더 이상 체격과 근육의 시기가 아닙니다.

사회진출 여성의 수가 많아지면서 가정의 주도권이 다시 여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뚜렷한 일반적 추세입니다.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보다 연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아내 연상인 경우도 많아지고 띠동갑에 가까운 연하의 아내를 둔 가정도 많습니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가정입니다.  생물학적인 근거와 사회문화적인 이유로 '현대사회'라는 제목의 그림은 주로 여성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남자들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새로운 구도의 그림입니다.


게슈탈트(Gestalt)는 형태(形態)를 나타내는 독일어입니다.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은 인간은 어떤 대상을 개별적 부분의 조합이 아닌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심리학파입니다. 하나의 그림은 부분을 그린 것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지만 게슈탈트 심리학은 그림 전체가 부분의 집합체를 그린 것 이상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앞자리를 차지하여 남자들이 포커스를 받던 그림에서 이제는 여자가 앞에 앉아 포커스를 받는 그림으로 바뀌는 시대입니다. 굳이 앞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버티면 '역사적인 사회적 꼰대'가 니다. 시대의 맥락이 바뀌었으니 앞자리를 내주고 스스로 뒤로 물러나 앉아야 할 상황이 되면 스스로 뒤로 물러나 앉을 수 있어야 남자 꼰대를 면할 수 있습니다.




근육의 힘이 노동력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마인드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우수 노동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한 가정의 브레드어너(bread earner)가 되려는 자는 권위와 더불어 의무도 질 수 있는 튼튼한 허리와 어깨가 필요합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튼튼한 허리와 어깨는 무엇일까요? 남자만이 그 허리와 어깨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남녀 간의 진영논리로 성차별을 부추기자는 게 아닙니다. 앞자리에 앉을 사람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앉을 사람이 앉아야 하고 뒷자리에 물러나야 할 사람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기꺼이 물러나는 게슈탈트를 만들어내는 세상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생물학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여자들이 사회적으로도 강한 존재로 약진하는 시대입니다. 여자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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