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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Aug 15. 2023

스톡홀름 증후군


대학 3, 4학년 이태 여름방학 동안 4주간씩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네 시간씩 교육받는 이외에 여름방학 4주간  동안 한여름 염천지하 뙤약볕 아래서 훈련받으며 정신은 철근처럼, 몸은 콘크리트처럼 양생 되고 양생 된 콘크리트에 갈색 페인트를 칠한 듯 얼굴과 팔은 검게 그을렸습니다.


지금부터 43년 전이어서 그때는 지금의 군대훈련과 방식이 많이 달랐습니다. 군사훈련이 반 정도이고 소위 기합이라 불리는 얼차렷 정신교육이 반쯤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구대장으로 불리는 위관 장교가 생활교육을 맡았는데 제때 밥상 못 받은 못된 시어머니 역할입니다. 구대장은 늘 곡괭이 없는 곡괭이 자루를 들고 다녔습니다.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후보생이 보이면 가차 없이 "엎드려"를 외쳤습니다.


오전 오후 훈련 일과시간 8시간이 끝나면 저녁식사 후 생활관인 내무반에서 지내게 됩니다.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밤 10시에 시작되는 생활점검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취침점호라 불리는 고된 하루의 마지막 절차입니다. 쓸고 닦고, 난닝구 빤스 군복의 각을 잡고 길이와 폭을 맞추어 면직물 의복을 금속으로 만들어야 하는 연금술의 시간이었고 검은색 군화에 불광을 내어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로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준비를 잘하든 못하든 운명은 낮시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장교가 되어 6개월 구대장을 해보니 그렇더군요. 못하든 잘하든 구대장의 판단은 시험 전 채점이었습니다.


취침점호 중 드디어 구대장의 일갈이 터져 나왔습니다. 귀관들~ 얼이 빠졌구나 ~ 지금부터 집 나간 얼을 찾으러 나간다. 완전군장 꾸려서 연병장에 집합하는 시간 3분!!! 세 시간을 점호 준비했건만 주어진 3분은 금속을 면직물로 바꾸는 역연금술의 시간, 유리구두가 다시 소가죽으로 변하는 시간,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3분이라는 말에 모두 넋이 나가 추어탕거리 미꾸라지 솥에 소금 친 듯 생난리굿판이 벌어집니다. 연병장 바닥에 떨어진 얼을 찾아야 하는데 들러맨 배낭에서 군화가 풀려서 떨어지고 모포가 풀려 너풀너풀거리고 말이 아닙니다. 피 끓는 젊은 몸이라 배낭 메고 목이 터져라 군가를 부르며 연병장을 한 시간 뛰어도 문제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연병장에서의 달밤 얼찾기 시간이 끝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던 것처럼 배낭 안에 마구 쑤셔 넣은 것들로 우리가 다시 연금술사가 되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창작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만물의 영장인지라 생산성 제로인 똑같은 작업을 또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매우 힘들어합니다. 압력밥솥 추가 도는 소리같기도 하고 방울뱀의 꼬리 떠는소리 같은 'ㅆ'계열의 마찰음들이 수십 개의 입술과 치아들 사이로 내부반 곳곳에서 새어 나옵니다. 구대장이 옆에 있으면 방울뱀 수십 마리가 곧장 달려들어 물어뜯어버릴 기운이 감돕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훈련을 받으며 물을 마시면 곧바로 땀이 되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휴식시간에 식수대에 줄을 서면 열사병과 일사병을 막기 위해 아스피린 모양과 크기가 흡사한 소금을 하나씩 받아서 물과 같이 먹어야 합니다. 구대장이 눈을 부릅뜨고 옆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건조대에 있던 남의 팬티를 가져가 입었다가 들켜서 싸우는 동료, 불침번 교대 시간에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동료와 다투며 싸우며 때로는 장난치며 4주간이 지났습니다. 


퇴소 전날밤 취침점호시간에 약간의 술과 짧은 여흥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술꾼 친구들은 아쉬워할 참새눈물만큼의 술이지만 내일은 집에서 잔다와 구릿빛 건강한 모습으로 여자친구를 만난다는 들뜬 마음으로 한 잔 막걸리가 다섯 병의 고급 와인 못지않은 시간입니다. 취하지 않아도 취한 척하는 게 예의인 시간입니다.


내무반 양쪽 침상 사이의 좁은 통로에 모두 나와 어깨동무에, 어릴 적 하던 기차놀이에, 동요에, 군가에 '亂離blues'가 벌어지는데..... 바로 그 순간! 군복 상의를 벗어젖힌 구대장이 난닝구 바람으로 난리부르스의 중앙 무대로 들어왔습니다. 평소에 검은 화이버가 눈썹아래까지 내려오게 쓰고서 도대체 어디를 보는지를 알 수없던 그가, 그래서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가늠이 안되던 그가 무장해제를 하고 어깨동무 대열에 끼어든 겁니다.


이때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방울뱀들을 때려잡던 곡괭이 자루와 '촤르르르~~~ 쉭쉭' 거리던 방울뱀들이 하나가 되어 기차놀이를 하고 입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 거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함께 난리부르스를 췄습니다. 어깨동무에서 느껴진 그의 어깨는 의외로 약했습니다. '한 주먹 감'으로 고백하며 다가온 그에게 우리는 그의 명령이라면 알프스 설산을 넘는 한니발의 군대가 되고 루비콘 강을 건너던 시저의 병사가 되어도 좋다를 다짐했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4주간의 훈련이 다시 시작되어도 좋고, 그의 앞에서 정말 순한 양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신기한 마법에 걸렸습니다. 퇴소하며 나갈 때 앙다문 입으로, 눈으로 레이저 광선을 뿜어내며 그를 노려보아주고 나가겠다고 다짐했건만 5분간의 난리부르스로 모두의 마음에서 곡괭이자루는 시원하게 뽑혀나갔습니다. 마지막 밤이 그렇게 저물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함과 동시에 장교 임관을 하고 광주에 있는 상무대에서 4개월 훈련을 받은 후 최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하다가 제대를 했습니다. 지금도 군복 시절 기억을 더듬노라면 제일 강렬하게 다가오는 장면은 그 정체 모를 희한한 난리부르스 현장입니다. 그때의 함성과 땀냄새 그리고 하나 된 일체감의 기억은 하나 둘 기억을 잃어버릴 나이가 되어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듯 생생합니다. 나중에사 이런 느낌과 현상을 정의하는 용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용어'의 반열에  들었음은 생소한 일반적 현상(?)이라는 뜻일지 모르겠습니다.




스톡홀름증후군(Stockholm syndrome)


1973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국가인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크레디트반켄은행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는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고 자루에 돈을 담으라고 은행원들을 위협합니다. 그 사이에 은행보안시스템을 통해 강도들의 침입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이 출동하게 됩니다. 은행 안의 사람들은 인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질들은 총을 든 흉포한 강도들에 공포를 느꼈습니다. 돈을 잃어도 좋으니 살아나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경찰과 강도 간 대치시간이 길어지면서 은행 안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게 됩니다. 강도에게서 느끼던 인질들의 공포심이 차츰 누그러지고 인질들과 강도 간에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강도들은 4명을 인질로 삼아 6일 동안 경찰들과 대치했는데, 강도들이 인질들에게 공포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인질들을 쉽게 정신적으로 사로잡았습니다. 폐쇄공포증으로 힘들어하는 인질을 갇혀있던 작은 방에서 넓은 공간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가 하면 가족과 연락하지 못하는 것으로 불안한 인질을 위로하고, 감기로 고통스러워하는 인질에게 코트를 벗어주기도 했습니다.  


며칠간의 인질극이 끝나고 강도들이 경찰에게 체포되는 순간 강도들과 인질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나중에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말로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더불어 경찰에게는 강도들을 선처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이런 기이한 현상에 스톡홀름증후군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로 스톡홀름 크레디트반켄 은행에서의 인질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게 사람 마음입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는 이유는 두 얼굴을 가진 일종의 심리적 기습공격에 무너지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대장의 상반된 두 모습의 간극에서 내가 느꼈던 마음처럼 말입니다.


부모나 교사로부터 물리적 체벌을 당한 뒤 나중에 부모나 교사가 손을 꼭 잡고 "내가 너를 미워서 그랬겠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많이 아팠지 미안해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어"라고 말을 하면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에서 많이 보게 되는 한 장면입니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수사관의 윽박지르는 태도에 피의자는 위협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에 다른 수사관이 들어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권하거나 물을 권하며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며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듭니다. 피의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열쇠를 얻으려는 게 아닐까요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내가  "그 이가 때리긴 해도 착한 사람이라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피해자인 아내가 오히려 가해자인 남편을 변호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게 되면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처벌하게 되어있었습니다만  n 번 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을 계기로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 연령을 만 16세 미만으로 높이는 법률이 2020년 5월 19일 공포되었습니다. 순진한 미성년자를 꾀어 다정하게 대해주면서 성적 착취했을 때도 스톡홀름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들이 미성년자나 성인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행하는 사례들이 있지만 금방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고 숨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적 구원이라는 미끼에 걸려들었기도 하지만 교주의 카리스마(?)에 미혹되어 교주는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의 인물이라고 느끼던 중에 세속적인 인간으로 접근하는 교주의 모습에 기습공격 당한 게 아닐까요?




경계해야 합니다. 스톡홀름증후군이라는 이상심리 때문에 자칫 우리들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신체적 정신적 미성숙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올바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그런 방법이 효과적이고 최선의 방법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면 평생 잘못된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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