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의 고매한 인품을 두고 말할 때 '그분의 향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분의 모습'이나 '그분의 말씀'이라는 표현보다는 그분의 향기라는 표현이 더 포괄적이고 더 추상적이고 더 멋있습니다. '은은하다'라는 형용사는 '모습'이나 '말씀'보다는 '향기'와 어울리는 말입니다. '말씀은 향기'라는 은유적인 수사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말씀의 깊은 뜻이 향기가 되어 온누리에 은은하게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은(隱隱)하다에서 한자 '隱'은 숨기다 가리다의 뜻을 갖습니다. 향기를 포함한 냄새는 시각적 모습과 청각적 소리 뒤에 은자(隱者)로 숨어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인지기능의 제갈공명과 같습니다. 삼고초려의 요청을 받고 나서야 출사 하듯이 숨어서 은거하는 감각 같습니다.
냄새와 향기는 퍼진다고 합니다. 모습은 빛의 속도 약 30만 km/s로 전달되고, 소리는 초당 340m/s의 속도로 전달되지만 냄새는 '隱隱/h'의 속도로 전달됩니다. 서두르지 않으니 군자 같습니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
여성 특유의 청결함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아마 후각적 민감성에서 인 듯합니다. 어지럽혀진 공간은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 청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냄새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맡아내는 게 여자들이니 '꼬리한' 냄새도 잘 맡아낼 것입니다. 남자라면 잘 견뎌낼 냄새에도 치를 떨 것입니다. 물론 남자도 남자 나름이요 여자도 여자 나름이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청결하다' 보다는 여자는 '청결지향적이다'라고 말해두겠습니다.
내 남자의 향기 운운하는 상업광고 카피 말고 실제로 여자가 후각에 민감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있는 걸까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넬 화학 감각센터는 <네이처 신경과학지>에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성보다는 여성의 후각이 더 발달했다는 내용입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때문이라는 겁니다. 남성과 여성이 사춘기에 도달했을 때 남녀 간 서로 다른 성징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하므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아기오리'에서는 알껍질을 깨고 귀여운 오리들이 세상으로 나오다가 마지막 알에서는 귀여운 아기 오리와 다른 모습을 한 못생기고 큰 오리가 태어납니다. 이상한 모습 때문에 어미에게서 버림받고 무리에서 쫓겨납니다. 쫓겨난 이유가 밤비신드롬의 사슴처럼 오리가 후각이 발달하지 못해서 시각에만 의존할 정도여서인지 아니면 나중에 자라서 백조로 밝혀지는 '못생긴 오리'의 타고난 백조 냄새 때문에 쫓겨난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안데르센은 어린아이들의 상상력과 정서 발달을 위해 스토리를 꾸민 것일 뿐, 과학적인 근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데르센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동화창작 이후 못생긴 오리를 통해 얻은 반전의 기쁨과 통쾌함을 즐겼을 그리고 지금도 즐기고 있는 수백억 '미운 아기사람'들의 뭇매를 맞을 각오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의 냄새와 고소름하게 익어가는 고등어구이에 익숙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발급받은 후각신분증명서를 아직도 가지고 계시나요. 분실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발급받을 생각조차 없으신 건 아닌지요. 혹시 서양식 ID카드를 받아서 자랑스러워하고 있으시지는 않나요. 서러움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백조로 태어나는 사람이 될지언정 냄새를 이유로 어머니에게 '미운아기오리'가 되지는 마세요.
우리 민족에게도 후각신분증명서가 있습니다. 서양 흡혈마귀 드라큘라도 쫓아내던 마늘 냄새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입니다. 마늘과 쑥을 먹고 백일을 지내면 여자가 되는 곰의 후손이 우리 민족이라는 건국설화를 잊으신 건 아닌지요. 호랑이도 견디지 못한 백일을 미련곰탱이처럼 견뎌낸 곰을 토템으로 하는 우리 민족입니다. 김치녀, 된장녀 등으로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 바랍니다. 서양인들이 육식하는 식습관으로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암모니아성 '노랑내' 때문에 육식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후각신분증명서로 삼듯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되도록 우리 조상님들께 잘 살아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