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메라는 음험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내 몫은 내가 감당한다'는 의미에서 이치닌마에는 '노블리스(귀족) 오블리쥬(의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에서 '器'는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큰 그릇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그릇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릇에 많은 걸 담을 수 있는 사람은 담은 것에 비례하는 만큼의 것을 사회에 환원할 의무를 갖습니다. 이 의무에는 법적인 것과 도의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블리스'라 쓰고 '큰 그릇'이라고 읽고, 큰 그릇이라 읽고 '오블리쥬'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담는 것만 크고 내놓는 것이 그에 상응하지 못하면 진정한 큰 그릇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돈 그릇을 가진 부자 노블리스는 세금과 기부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권력의 그릇을 가진 고위층 노블리스는 책임과 양심으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나이의 그릇을 가진 어른 노블리스는 가르침으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젊음의 그릇을 가진 남자 노블리스는 국방으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운동의 그릇을 가진 체육인 노블리스는 체능으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노래의 그릇을 가진 가수 노블리스는 감성 깨움으로 오블리쥬를 행해야 하고
글쓰기 그릇을 가진 작가 노블리스는 글이 칼보다 강함을 입증하는 오블리쥬를 행해야 합니다.
누구나 위의 항목에 몇 개씩 해당합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일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고 운이 좋아 얻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가지게 된 방법은 다를지라도 나의 그릇에 담긴 오블리쥬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릇에 담긴 오블리쥬를 행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다움'과 '스러움'이라는 명예의 전당(殿堂) 입堂서입니다.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증도 아니고 인증서도 아닙니만 ~다울 때와 ~스러울 때에는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됩니다. 어른답다, 남자답다, 예술인답다, 작가답다. 다움과 스러움의 자격을 얻기 위한 공작은 펼칠 수가 없습니다. 통하지 않습니다. 민심은 천심이기 때문입니다.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공작을 펴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 자는 설사 당선이 된다 해도 그는 결코 명예의 전당에 설 수 없습니다. 하늘의 저울대 위에 선 자이기 때문입니다.
계절은 계절다워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요. 내가 가진 그릇은 어떤 모양인지 어떤 재질인지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 내가 사는 계절에 맞게 싹-꽃-열매를 틔우고 피우고 맺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귀족들만 해야 할 게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