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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Sep 13. 2024

공리주의 vs. 집단지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싸우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총알에는 눈이 없어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니 젊은이들만 희생되겠습니까. 전쟁에서 지면 포성은 멈추겠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닙니다.  이긴 나라에게 전쟁배상금을 다 물어야 하므로 굶주림과의 전쟁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전쟁은 이기고 봐야 합니다.


싸울 군인이 부족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부상당한 병사들을 빨리 치료하여 다시 전선으로 보내야 합니다. 생사를 오가는 심하게 다친 병사와 가벼운 부상을 입은 병사 중에 누구를 먼저 치료해야 할까요. 전쟁 중이니까 생겨나는 고민입니다. 평시라면 당연히 심하게 다친 사람을 먼저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심하게 다친 병사를 치료해서 다시 전선으로 보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가벼운 부상을 당한 병사는 짧은 기간 치료를 하여 다시 전쟁터로 보낼 수 있습니다. 전쟁은 이기고 봐야 하니까요. 이기려면 군인이 있어야 하고 군인은 싸울 수 있는 군인이어야 하니까요. 가벼운 부상을 당한 군인을 먼저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물론 어느 쪽을 먼저 치료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일 때의 고민이겠습니다만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생기는 고민입니다.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산업발전을 이루던 시절에는 '大를 위하여요 小를 희생한다'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졌습니다. 滅私奉公(멸사봉공), 先公後私(선공후사), 殺身成仁(살신성인). 모두 비슷한 의미를 는 말들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 우리나라에서는 감염 확진자의 동선을 전 국민에게 공개하여 그야말로 확실하게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키는 방제책을 썼습니다. 국민들은 국가를 믿고 내가 '소'가 될지라도 기꺼이 희생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착한 국민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여 공개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 변호사 한 명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오래전에 자유를 포기한 나라이다. 물론 그 나라에 자유라는 것인 존재했다면 말이다"라고 비난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인 전체의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서구 다른 나라에서도 개인의 자유도 국가정책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여 국가정책에 강하게 반대한 국민들이 많았습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공리주의(公利主義) 벤담철학입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사회가 운영되어야 최고의 선(善)을 이루는 것이라는 입니다.  전쟁 중 부상병을 치료하는 경우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를 치료하는 데에는 살신성인에 버금가는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려냄으로써 전쟁에서 이길 수 있거나 다수를 바이러스 감염에서  구해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공리주의라는 것도 가성비를 따지는 효율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다수결(多數決)'도 공리주의에 입각한 효율적인 의사결정방법이겠습니다. 다수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하여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가장 민주적인 결정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터무니없는  나쁜 결정이 아니라면 최고의 결정이든 차선의 결정이든 결정에 따른 결과는 비슷할 산이 큽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찬성하지 않았던 무리가 다수결에 따라 결정된 것에 대해 지지하고 도움을 주면 만사형통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끝까지 반대하고 결정된 것을 뒤엎으려 합니다. 100명의 의견이 50대 50으로 갈라져 있을 때 한 명의 결정 변경으로 51대 49가 되면 캐스팅보트 한 명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최대다수 무리가 바뀌게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뿐이지 최대행복을 가져다주는 방법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차이도 없습니다. 49명인 상수는 변수 2명에 따라 최대행복의 무리가 될 수도 있고 최대불행의 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생 수준의 오지선다형 물리학 문제를 10만 명의 중학생들에게 풀게 을 때와  명의 물리학 전공자에게 풀게 했을 때, 어느 올바른 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을까요.  당연히 전공자가 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학생의  답이 정답일 가능성은 확률상 20%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중학생들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이라며   따르게 된다면 최대다수에게 최대행복을 줄 수는  있겠으나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선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투표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중학생' 수준을 넘지 못하고 선택받은 자의 양심과 도덕성과 지성이 낮다면 다수결의 원칙은 오히려 병폐가 됩니다.



2024년 정기국회가 회기 중입니다.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청문회 영상에 국민들의 시선이 모입니다. 겉은 코미디인데 속은 비극,  '겉코속비'입니다. 금배지도 다수결에 따라 달았고 국회에서의 입법, 예산심의도 다수결에 따르게 됩니다. 정당정치가 다수결이 갖는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받는 건 당연합니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서 당선이 되면 '당론'으로 결정된  것에 따라야 하니 이 또한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공리주의를 따르는 것입니다.  '배신자' '변절자' '색출' '수박과 토마토(겉과 속이 같으냐 다르냐를 뜻하는 말)'라는 섬뜩한 용어를 마구 쏟아내며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공리주의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국민들의 눈도장을 받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 눈에는 차기 선거 공천을 받기 위한 몸부림 밖에 안 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화론 학설을 내놓은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 프랜시스 골턴은 우생학 연구를 하면서 이상한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 한 마리를 두고서 체중을 맞추는데 두 집단을 이용했습니다. 우수한 유전형질의 확산을 연구하는 게 우생학이었으니 골턴은 소수의 소 사육 전문가집단과 다수의 일반인들로 구성된 두 집단을 실험집단으로 구성했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실험에서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제출한 체중의 평균값보다 다수의 일반인들이 제출한 체중의 평균값이 실제 체중에 더 근접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골턴 자신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가 나왔지만 이게 바로 집단지성의 힘입니다. 머리를 맞대면 더 나은 방안이 나오고 백지장도 맞들면 가벼운 법입니다.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여러 후보자들은 상대 진영의 인사를 기용하겠다고 선언을 하는 등 협치를 약속했지만 당선 후에 실제로 제대로 이행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승자독식, 승자독창(獨唱)만 하면서 '소의 체중'을 알아맞히지 못했습니다.



선거철 되면 공천받을 꼼수와 막무가내 막말로 인기  얻을 생각하지 말고, 선거에서 다수결로 당선되어서 다수결로 밀어붙일 생각만 하지 말고, 집단지성의 힘으로 역발산기개세할 연구 좀 하는 정치인 되어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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