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강물처럼 Oct 16. 2023

자유란 무엇인가? - 3

문제는 주인의식입니다


2023년 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8월 1일부터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일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부실한 대회 준비와 운영 미숙으로 세계적인 비난을 받아서 온 국민이 분노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휴가 중인 대통령이 냉방버스와 생수까지 챙겨서 지시를 내려야 하고, 국무총리가 야영장 변기를 청소해야만 공직사회가 움직인다는 것은 복지부동하는 공직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구조적·제도적 재정비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명하복과 공직기강을 생명으로 하는 공무원 조직이 활기를 잃어버리고 비틀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식의 잘못을 고치려 자식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종아리를 친 어머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일국의 총리가 야영장 변기를 청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하들을 꾸짖는 방법으로 옳았을까 하는 생각과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는 생각으로 울분이 치밉니다.





坐享其成(좌향기성)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체가 온 사원들이 일심단결하여 다시 살려냈다는 기사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부실기업들은 비틀대다가 아주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져 일어서지 못합니다. 탄탄한 기업과 부실기업의 차이는 주인의식이 강한 사원들이 얼마나 많으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사원 하나하나가 '이 회사는 내가 주인이다.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데 망할 리가 없습니다.


坐享其成(좌향기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앉아서(坐) 그 성과(其成)를 누린다(享)는 뜻일 텐데요. 재주는 사원들이 부리고 돈은 회사가 먹는다는 뜻으로도 쓰일 수 있겠습니다. 좌향기성을 생각하는 사원들이 많은 회사와 주인의식이 높은 사원들이 많은 회사 중 어느 회사가 도산위기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이익을 목적으로 생산, 판매, 금융, 서비스 따위의 사업을 하는 생산 경제의 단위체'  기업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국가도 기업입니다. 즉 국가기업입니다. 투자가인 국민들로부터 세금이라는 자본을 모아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생산, 판매, 금융, 서비스 따위의 사업을 하는 생산 경제의 최대 단위체입니다. 주인의식은 민주국가의 사원인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상식이자 교양입니다. 주인인 국민이 주인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민주국가일 수 없습니다.




주인의식은 자유를 먹고 자랍니다


주인의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면, 주인의식은 자유를 먹고 자랍니다.


자유와 질서의 양립은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과제의 하나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발전이 없고 질서가 없는 곳에서는 그 발전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어느 한쪽을 일으켜 세우면 다른 한쪽이 일어서지 못하는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다. 이 두 가지 이념을 현실에서 양립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명제가 되어왔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해답을 주었다.        

                                                                 시오노 나나미 著    <로마인 이야기 제1권>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로마인 이야기>에서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경우를 들어 자유와 질서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민주정을 국가운영체제로 삼은 아테네는 자유를, 엄격한 법에 바탕을 둔 공동체 스파르타는 질서를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테네의 정치 발전과 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자유였습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를 하면서 자유롭게 사유를 할 여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아테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아테네 시민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자유를 찾아 아테네로 정신적 망명을 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들을 잉태한 도시국가 아테네는 2500년 후의 현대인들의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화려한 정신문화를 꽃피워냈습니다.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나타나기 50년 전에 시작된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페리클레스의 등장으로 최고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는 귀족들이 아니라 민회라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관과 배심원이 시민들로 구성된 법정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습니다. 아테네는 국가 중대사뿐 아니라 작은 일까지도 민회에서 그리고 공정한 사법적 판결을 위해 시민 법정에서 민주적 투표로 결정하는 명실상부한 민주정치국가가 되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에 든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가슴은 답답함을 넘어 괴롭습니다. 국가 대소사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으로서의 자존감과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페리클레스라는 위대한 정치가를 만난 것은 아테네의 행운이었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국가를 믿고 따른 아테네 시민은 위대했습니다. 페리클레스 치하의 아테네는 해양국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군사강국 스파르타도 아테네를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사망하기 2년 전에 시작된 스파르타와의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페리클레스의 사망과 함께 위대한 지도자가 불어넣던 자유정신의 호흡이 약해지면서  아테네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25년이 된 기원전 406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해군이 격돌하여 아테네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승리의 여신도 아테네의 승리를 질투했던 것일까요. 전투 중에 바다에 빠진 아테네 인들을 구조하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거두는 데 소홀했다는 명목으로 아테네 민회는 여덟 명의 승전 장군을 재판에 회부하였습니다. 저열한 정치인들이 권력을 탐하여 파렴치한 짓을 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항변


어쩌다 당시 민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홀로 표결에 반대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습니다. 유능한 장군들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남아서 이를 지켜본 장군들은 '장수로서의 자유'를 박탈당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롭게 전술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 군대는 적 앞에서 추풍낙엽과 같았을 것입니다.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 누리던 자유로 아네테는 강성했고 페리클레스 사후에 자유를 잃어버린 아테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인의식은 자유를 먹고 성장한다는 것을 망각한 아테네의 말로였습니다.




레오니다스 왕과 300 전사들


스파르타의 남자들은 7살이면 가족을 떠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공동체생활을 하며 용맹한 전사가 되기 위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서 살아난 새끼만을 기른다는 전설 같은 독수리의 육아방식을 스파르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약하고 장애가 있는 아이는 버렸습니다. 강한 전사로 태어날 수 없는 결격사유를 가진 때문이었습니다.


부모가 아테네인이 아니면 어떤 일이 있어도 아테네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던 아테네도 배타적이었지만 스파르타는 더욱 배타적이었습니다. 순혈 스파르타인이 아니면 군복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소수의 군인이 병영국가인 본국과 식민지를 방어하고 행정을 맡아야 하니 인구가 늘고 영토가 넓어질수록 소수 군인은 극소수 군인이 되고 더욱 배타적 국가로 변했습니다. 절서는 더욱 견고해야 했고 처벌은 도가 높아졌습니다.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100만 페르시아 대군의 진로를 막아내려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300 전사는 용맹의 전설이고 애국의 신화였지만  역사는 그들에게 잔인합니다. 근육질의 스파르타. 목숨보다 명예를 존중했던 스파르타. 자유보다는 질서를 추구했던 스파르타. 역사에 남은 것은 달랑 '스파르타식'이라는 단어 하나뿐입니다. 스파르타에는 강한 질서가 있을 뿐 정신의 자유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르네상스가 중세 시대의 암흑에서 벗어나기 위한 문예부흥 운동이라면 어느 시대의 문예를 부흥하기 위한 운동이었을까요. 중세의 지나친 질서를 벗어나기 위하여 고대 그리스의 자유로운 휴머니즘으로의 회귀를 꿈꾸었습니다. 르네상스인들의 정신은 당연히 아테네로의 회귀이지 스파르타는 아니었습니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을 찾아서 흐르던 물들이 모이면 줄기를 이룹니다. 깊이가 되면 물고기가 살고 물새들이 찾아옵니다.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윤슬은 보는 이의 노래가 되고 시가 됩니다. 교통수단이 되고 먹을 물을 주고 농사도 가능하게 하니 강에는 사람도 찾아옵니다. 고대 인류문명은 모두 강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질서를 벗어나면 강이 아닙니다. 강둑을 넘어서 흐르면 재앙이 됩니다. 자유와 질서도 강과 강둑과 같은 역학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면 둘이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강둑을 넘쳐흐르는 물은 재해이며, 물이 없는 강둑은 존재이유가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기처럼 노력 없이 마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물처럼 내가 찾아서 마셔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건강해지려면 충분한 물이 필요합니다.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야 합니다. 물을 적게 마신다고 죽지는 않지만 건강해질 수는 없습니다. 주인의식은 물과 같습니다. 남이 주어서 마시기도 하고 내가 찾아서 마시기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주인의식이 있다면 자유과 질서의 사이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조화로운 기업, 사회, 국가로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자유란 무엇인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