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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강물처럼 Sep 28. 2023

자유란 무엇인가? -2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말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입니다. 묘비명이 한 사람의 일생을 압축한 말이라면 소설 속의 조르바는 작가 카잔차키스 자신이었습니다. 그리스인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았던 그리스인의 기질을 그대로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인을 두고서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호기심, 모험심이 충만한 민족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당시의 그리스가 자유로운 사고와 개별성의 가치가 인정되는 사회였다는 뜻입니다.


크레타 섬은 기원전 2000년 전후에 그리스 문명이 태동한 곳입니다. 현대 서양문명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그 바다는 '그리스'라는 강과 '히브리'라는 강에서 흘러든 강물의 바다입니다. 그리스라는 강의 발원지가 바로 크레타섬이었습니다.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것은 크레타 섬과 이집트 간의 거리가 본토와 이집트 간의 거리보다 가까워서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본토보다 먼저 접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레타 섬의 문명은 본토 미케네 지방으로 건너가 미케네문명을 이루게 됩니다.


트로이 전쟁의 전후(前後)를 서사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는 미케네 문명권의 국가들이 연합하여 트로이와 벌인 전쟁 그리고 전쟁 후 연합국의 일원인 이타카의 왕 오디시우스가 귀국 과정에서 겪는 열두 가지 모험담입니다. 진취적이고 모험심으로 가득 찬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를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가득한 그리스인이 지은 이야기입니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취, 모험, 독립, 자유의 '크레타DNA'를 그대로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시우스 왕을 내세워 그리스인의 호기심과 모험심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면, 카잔차키스는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를 내세워 그리스인의 자유애호정신을 세계 만방에 알렸습니다. 실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추천되었으나 한 표 차이로 <이방인>의 알베르 까뮈에게로 영예가 돌아가버리기도 했습니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고 그가 지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의 DNA가 낳았습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조르바는 자유와 상반되는 개념을 바램과 두려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바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에 구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조르바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찌를 먹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느 날 아버지의 돈을 훔쳐 버찌를 한 광주리 사서 배가 터지도록, 토할 정도로 먹고는 그 후로 버찌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공으로 일하면서 흙반죽 얹은 물레를 돌리는데 왼손 집게손가락이 방해가 된다고 그 손가락을 도끼로 찍어내 버립니다. 그에게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신체 일부분일지라도 거침없이 절단해 버립니다. 부전자전이었던 걸까요. 조르바의 아버지 역시 그렇습니다.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담배를 피우고 싶었고 담배를 두고 온 게 생각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담배 때문에 갈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어버립니다. 진정한 자유란 구속됨이 없는 상태입니다.


조르바는 여러 곳을 유랑하면서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마을, 어느 도시에나 과부는 있기 마련이었으니까요. 이성으로서의 여자에게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지 않는 그를 두고 '진정한 짐승'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조르바는 노소미추(老少美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여자에게서 아프로디테를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능력이 아닙니다. 보통의 남자들은 여자가 주름을 펴고 오면 사랑을 느끼지만 조르바는 여자의 주름살을 펴줄 줄 아는 사랑꾼이었습니다. 성 윤리와 도덕을 들이대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그만의 사랑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자에게 빠지지 않습니다. 여자에게 빠진다는 것은 구속당하는 것이며 빠지는 순간 자유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핏 광인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인물입니다.


조르바는 범신론적입니다. 대하는 모든 것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유일한 재산인 악기 산토르를 연주할 때의 황홀을 광부로서 광산을 일할 때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크레타 출신의 세계적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한 적 있었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민들을 위해서 공연 수익을 기부했다고 하니 아마 2007년에 내한공연을 했었나 봅니다. 공연 당시 측근의 설명에 따르면, 나나 무스쿠리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자신의 노래가 인기를 끈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제 노래에 반영된 정서가 한국인의 그것과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 아닐까요."


나나 무스쿠리의 눈에는 그녀의 조국 지중해의 반도 국가인 그리스와 극동의 조그만 반도 한국,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고 먼 두 나라 민족에게서 독립을 추구하는 정서, 모험심, 진취적 기상이 서로 닮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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