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근무하면서 1986년부터 2007년까지 21년 동안 고등학생 학급의 담임교사가 되었습니다. 중견의 나이가 되어 보직교사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 교사가 반드시 맡게 되는 게 담임교사 업무입니다. 학년초에는 학생파악을 빨리 하기 위해 다수의 학부모 상담을 하게 되는데, 종종 이런 말을 하는 학모들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너무 착해빠져서 손해 볼 일을 많이 당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 험난한 사회에 나가면 착한 것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울 텐데 부모로서 큰 걱정입니다." 아이의 착함을 알아달라는 마음이 반이고, 그 착함의 일부가 '살짝 약아빠짐'으로 변질되면 좋겠다는 바람인 것 같았습니다. 나도 아이를 기르는 부모로서 학모의 마음이 충분이 이해되고 공감이 갔습니다. 그러나 성적이 그런대로 괜찮은 학생들의 학부모와의 상담은 성적을 유지하거나 더 올릴 수 있는 방법과 교우관계가 주된 내용이 됩니다만 대부분 착함과 약아빠짐을 얘기하는 학부모들의 아이들은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연봉 높은 직장을 구해서 잘 살 것이라는 생각과 반면에 성적이 우수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과 직업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부모가 생각하기에 착하기만 하니 사회인이 되면 고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부모의 노파심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성적이 좋은 학생이건 좋지 않은 학생이건 이기적인 문제와는 별 연관성이 없다는 게 저의 학생지도 경험입니다.
차츰 변하고는 있으나 학벌과 직장이 주는 프리미엄이 큰 사회가 인성마저 뒤흔드는 세태가 정말 안타깝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상장은 하나같이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이 우수하여...'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바르고 품격이 속되지 않고 고상하다'는 뜻을 가진 '방정(方正)하다'는 방법이나 방향이 올바르다는 의미가 됩니다. 행동이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된다는 뜻입니다. 순서를 뒤바꾸면 '정방'일 텐데 정방형의 정사각형처럼 각도와 길이가 정확하다는 그런 뜻으로도 보입니다. 요즘의 상장에는 품행이 방정하고 대신에 '품행이 바르고'로 순화되었지만 품행과 학업의 상장 내용상 순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순서가 그러한 것은 '먼저 사람이 되어라'라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따른 것이겠습니다. 하지만 학업성적우수 상장 문구의 속뜻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것은 시험을 치른 다음 드러난 공인의 신뢰할 수 있는 결과이며 학생의 미래를 보장해 줄 인증서이지만 품행은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라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성적우수상 수상 학생의 품행은 거의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7년 교장이 되고부터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면 진학보다는 진로와 독서에 관심을 갖도록 강의를 하고 진로문제와 독서가 학생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강조도하였습니다. 의외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학부모들의 의식 수준의 변화가 참 반가웠습니다. 물론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또 성적얘기를 꺼내겠지만 제가 담임교사를 할 때와 같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담임교사를 하던 때가 1980년대와 90년대였으니까 그때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이 지금은 학부모가 되어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변해왔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변해있습니다. 콩나물시루의 콩에다가 영양분도 없는 그냥 맹물을 부어줄 뿐, 콩 사이로 물이 줄줄 흘러내릴 뿐이지만 콩은 콩나물로 자랍니다. 이와 같은 게 바로 교육백년지대계의 속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실의 세속가치가 교육의 가치를 넘어서는 사회에서는 교육백년지대계는 도모하기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은 <관자>라는 책에서 ‘곡식을 심는 것은 일년지계, 나무를 심는 것은 십년지계, 사람을 심는 것은 종신지계’라고 했습니다. 십 년을 내다보려면 나무를 심고 백 년을 내다보려면 사람을 키워라는 말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꿈나무이고 교육을 잘 받은 인재는 재목인 것입니다.
그러나 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속으로 삽을 쥐어주고 진출시키는 교육은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자기주도적 학습역량, 창의성 그리고 봉사정신을 대입성적의 큰 부분으로 도입한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 부모의 사회적 역량에 좌우되는 '학생 父(아버지)종합전형'으로 전락해 버렸고, 교육의 부익부빈익빈현상을 심화시켜 버렸습니다. 내 자녀의 입시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같은 것으로 갚음을 해야 하는 품앗이 현상도 없지 않은 현실입니다. 입학정원이 정해진 입시에서는 부정직한 1명의 합격은 정직한 1명의 탈락을 의미합니다. 부정직하고 이기적인 2명은 정직한 2명의 불합격을 의미합니다. 2018 년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 2020년의 <펜트하우스>, 2021년의 <멜랑꼴리아>, 2023년의 <일타스캔들>은 교육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일부의 국민들은 부끄러웠고 일부의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세상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세상으로 변해 대기만성, 자수성가, 금의환향, 절차탁마, 입신양명의 세상이 되었다가 또다시 금수저 흙수저를 논하는 신분제 사회로 회귀해 올라가지 못할 나무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숲 속에 갇힌 듯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는 비리공무원이었다가 범죄조직에 몸 담아 '입신양명'을 꿈꾸는 최익현(최민식 扮)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특기는 뇌물제공, 취미는 인맥 넓히기입니다. 자신의 사업에 이줄저줄 끌어다 대며 승승장구합니다. 처세술의 달인입니다. 집단이기주의는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합니다. 추구하는 이익이 같은 인사들이 모여서 세력을 형성하고 목적달성을 위해 대단한 단결력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목적을 이루면 그때부터는 노획물을 두고 개인적인 이기심이 발동해서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불발탄이 되고 맙니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 이기심과 집단이기주의가 만들어 낸 불발탄이 사회 곳곳에 매장되어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요즈음 희한한 말이 생겼더군요. '평균적인 양심'이란 어떤 양심일까요. '전체국민 양심의 합/국민수'. 이렇게 계산하면 얼마가 나오는 건가요. 아마 부패인식지수, 국가청렴지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패와 청렴은 이기심과 양심이 얼마나 살아있느냐와 같을 것입니다. 모 정당의 인사들이 자신이 속한 당의 전직 현직 당대표들의 도덕성을 개탄하며 "국민 평균만큼이라도 깨끗하고 정직해다오, 이게 그렇게 어렵나”라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어서 속셈이 있는 말이겠지만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 '선당후사'는 사적인 문제에 앞서 당의 목적을 우선으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들이 '선국가후당'으로 말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솔로몬 왕의 재판'이 생각납니다. 한 아기를 두고서 두 명의 어머니가 이 아기는 내 아이라고 싸우다가 왕 앞에 나왔습니다. 왕은 말합니다. "칼로 이 아이를 반으로 갈라서 두 어머니에게 반씩 주어라" 나라가 분열되는 걸 차마 견딜 수 없다면 정당은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바뀌려 하지 않습니다. 목적은 권력을 쥐는 것이지 국가의 앞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당에 속한 정치인 중에는 양심가도 있고 국가의 안위를 염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개인의 양심은 질식해버리고 맙니다.
영국의 행동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술한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는 1976년에 세상에 나와 아직까지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드는 책입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유전자는 생물체를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남기려는 이기적인 유전자이며, 유전자를 가진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숙주일 뿐이며 이타적인 행동도 나의 명성과 평판과 나에게 유리함을 고려한 이기적인 계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를 이용하여 '밈'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밈이란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생명체의 기억에 저장되었다가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문화적 유전자’입니다. 종교는 생물적 유전자로 유전되는 게 아니라 태어난 가정의 종교를 아이가 그대로 유전처럼 물려받게 되는 경우입니다. 종교도 밈의 하나라는 게 도킨스의 주장입니다.
내 아이가 평균적인 양심만 갖고 조금 약아빠진 아이가 되어 준다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을 가진 부모들. 내 아이가 이런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생각들도 문화유전자 '밈'이 되어 바이러스처럼 우리사회에 퍼진다면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평균적인 양심만 가져도 나무랄 수 없을 정도인 나라의 국민평균양심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양심인지를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