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제국은 황제정 이전에 7대에 걸친 비세습의 왕정의 시기 그리고 이어지는 공화정의 시기를 거쳐서 황제가 통치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왕정이었던 고대 로마의 정치체제가 공화정으로 바뀐 사건이 있었습니다. 왕정 시기의 마지막 왕이었던 7대 왕 세르비우스는 사위인 타르퀴니우스와 딸 툴리아에 의해 살해되고 타르퀴니우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 왕에게는 섹스투스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섹스투스는 정숙한 유부녀 루크레티아를 짝사랑하던 중 남편이 없는 틈을 타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였습니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남편에게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 왕자의 짓임을 알리고 복수해 달라는 말을 남긴 후 자결을 하였습니다. 타르퀴니우스 왕도 선왕 세르비우스를 죽이고 왕이 되었고 왕의 아들 섹스투스는 남의 아내를 범하였으니 대를 이어 악행을 저지른 부자가 되었습니다.
루크레티아의 남편 콜라티누스와 함께 달려온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선동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던 타르퀴니우스 왕은 로마로 입성하지 못했고 왕자 섹스투스는 도망쳤다가 그에게 원한을 품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브루투스는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는 왕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기원전 509년을 기점으로 하여 로마가 공화정으로 운영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로마공화국은 500년을 공화정 체제 속에서 카르타고를 비롯한 주변국들을 차례로 정복해 가며 지중해 최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안정된 공화정의 틀을 깨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던 시저는 공화정을 유지하려는 동명이인의 또 다른 브루투스와 그 일당에게 암살됐습니다.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경쟁관계에 있던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악티움 해전에서 격파한 후,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되어 스스로를 존엄자 '아우구스투스'로 칭하면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었습니다.
공화정 로마에서는 1년 임기의 국가 최고위 통치자인 집정관 2명이 선출됩니다. 그리고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이 국가고문단 역할을 합니다. 또 로마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민회가 있습니다. 현대 민주국가의 삼권분립과는 성격이 사뭇 다릅니다만 국가 통치의 축을 셋으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는 것은 사뭇 흥미롭습니다.
고대시대에 왕도 없이 민관군이 일심단결하여 당시의 지중해 최강국이자 최부국인 카르타고와 120년간 싸워서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로마의 대제국 형성과정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바로 이 말속에 그 비결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년제국의 기틀은 사실 로마가 공화정국가일 때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여 이기면 그 나라를 속주로 삼되 그 나라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약간의 세금을 내면 거의 간섭도 하지 않았고 속주민이라도 로마 원로원 의원이 될 자격을 주는 등 지금으로서도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관용적이고 포용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한니발이 로마를 고립시키려고 로마의 속주와 동맹국들을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려 했지만 패전하는 로마를 배신하는 동맹국은 거의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패장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진 경험을 통해서 큰 교훈을 얻었을 터이니 더 큰 능력을 갖춘 국가의 인적 자원으로 인정하고 그를 수용하였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지휘하는 카르타고군에 의해 로마군이 전멸하다시피 패하였지만 살아남은 로마의 지휘관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포에니 전쟁의 적국 카르타고는 패장을 처형시키고 있었지만 로마는 전쟁을 하는 장수가 처벌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기원전 367년에 리키니우스법으로 모든 공직을 평민에게도 개방하였고, 기원전 287년에는 평민집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그대로 국법으로 삼는다는 호르텐시우스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120년에 걸쳐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카르타고를 꺾어버리자 전에는 로마를 툭툭 치며 간을 보던 주변국이 일시에 로마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패전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노예도 그 수가 엄청났습니다.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은 카르타고가 사라지자 지중해는 로마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모든 부가 로마로 집중되었습니다. 바야흐로 All roads lead to Rome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세계역사를 더듬어보면 강대한 국가가 멸망으로 들어서는 원인은 강대한 시절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한 게 아니라 사실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고 정점에 섰다는 말은 사방 모두 내리막 길뿐이라는 뜻입니다. 챔피언이 되면 이제 질 일만 남은 셈입니다.
로마의 군대는 로마의 시민으로만 구성되었습니다. 직접세를 낼 수 있는 시민이 세금 대신 병역으로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편성된 군대였습니다. 포에니 전쟁의 전선이 시칠리아, 에스파니아, 이탈리아 본토 그리고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로 까지 확대되자 전쟁은 길어져 12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자연히 군 복무기간이 길어졌고 가장인 아버지나 아들이 전쟁터로 나가자 일손이 부족해진 자영농은 견디지를 못하고 땅을 처분하고 대도시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병역이 면제된 시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니 원로원 의원을 포함한 귀족들이 노예를 이용하여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나마 남은 소규모 자작농은 버틸 길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전쟁 후 해외에서 들어오는 국가 수입이 증가하자 국가에서는 직접세를 폐지해 버렸습니다. 재산정도에 따라 내던 세금이 폐지되자 유리한 것은 부유층이었습니다. 또 해외 식민지가 많아지자 사업영역이 확장되었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빈부의 격차가 로마에서도 일어나 점점 더 간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우려한 포에니전쟁의 영웅 스키피오의 외손자 그라쿠스 형제가 호민관으로서 로마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둘 다 살해되고 맙니다. 영웅 스키피오의 피를 물려받은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헌신적인 가정교육으로 자라난 그라쿠스 형제는 국가보다는 자신의 부를 늘리려는 귀족과 자산가들의 이기심에 맞서 싸웠으나 돈의 맛을 알아버린 욕심에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시대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무너진 로마는 무너지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Jacques-Louis David, <The Lictors Returning to Brutus the Bodies of his Sons(1789)>
위 그림은 프랑스 신고전주의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브루투스 아들의 시체가 돌아오다>라는 그림입니다. 섬뜩한 제목이 붙여졌지만 시대를 잘 반영해 주는 명화입니다. 브루투스는 왕정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누스와 성폭행범인 그의 아들 섹스투스를 응징한 바로 그 사나이였습니다. 공화정 시대의 초대 집정관(공화정 최고위 통치자)이었던 브루투스는 자신의 아들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복고하고자 하는 국가 반역 모의에 가담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공화정의 가치를 아들의 목숨보다 우위에 두었습니다. 처형된 후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과 오빠의 주검에 오열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모습에 대조되게 어두운 구석에서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믿으며 아버지로서 슬픔에 잠긴 아버지의 고뇌가 그림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의 팔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집정관의 팔이지만 그의 발과 발가락은 아들의 죽음에 고통에 찬 아버지의 것입니다.
반면 팍스로마나로 일컬어지는 로마의 평화시대의 다섯 군주 중 마지막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전의 전통을 깨고 자신의 아들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삼았고 콤모두스는 로마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콤모두스는 칼리굴라, 네로와 더불어 로마 황제 3 악당 중 하나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글래디에이터>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기의 부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扮)에게 황위를 물려주려다가 아들 콤모두스(호아킨 피닉스 扮)에게 살해되는 황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는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 리들리 스캇 감독이 그렇게 한 것이지 실제 역사에서는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세습하게 한 황제였습니다.
아들의 죽음보다 국가를 우위에 둔 집정관 브루투스, 아들의 그릇과 인성을 알면서도 그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준 아버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국가지도자로서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에는 이성과 논리를 인간 삶의 핵심요소로 보고 감정이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 문제에 이르서는 관념뿐인 공염불이 되어버렸습니다.
로마를 천년제국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로마는 초기의 왕정에 이어 500년간의 공화정 시대를 거쳐 로마제국 시대로 이어집니다. 천년제국 로마의 기틀은 관용과 포용의 정신으로 지중해 연안국가들을 아우르던 시대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공화정 로마는 에투루리아와 그리스에게 겪던 핍박과 서러움을 기억해 내어 온 나라가 개인적인 이기심을 억누르고 차근차근 강대국으로 성장해나가는데 힘을 모았지만 공화정의 유산을 금수저로 물려받은 황제정 로마는 '노블레스 오블리쥬' 정신을 망각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쇠약해졌고 돈으로 고용한 용병 게르만 부대에 의해 서기 476년 마지막 호흡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이 갖는 이기심이라는 본능을 무시해서 실패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고 자본주의는 이기심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고 있어서 실패할 이데올로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마는 국가보다는 이기심이 난무하는 가운데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일과 사치에 몰두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허망하게 사라져갔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와신상담' 고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범려와 문종의 도움으로 오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자 구천의 책사였던 범려는 미련 없이 월나라를 떠나면서 친구 문종에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구천은 관상이 장경조훼형으로 목이 길고 입이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있으니 어려움은 같이해도 부귀는 같이 할 수 없는 인물이네. 자네도 속히 월나라를 떠나게"
월나라처럼 어려움은 같이해도 부귀는 같이 할 수 없었던 게 로마의 운명이었나 봅니다. 2차 포에니전쟁 중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에 패해 7만 명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카르타고군 희생자는 5만 5천 명에 불과할 정도의 처참한 패배였습니다. 카르타고군에 포위되어 밖에서 안으로 양파껍질이 벗겨나가듯이 한 꺼풀 한 꺼풀 그렇게 도륙되었습니다. 카르타고와 그토록 힘겨운 전쟁을 치르며 120여 년을 온 나라가 일치합심하여 끝내 승리를 하였지만 승리한 후의 영광과 막대한 부를 두고 로마황제정은 내부의 적을 이기지 못하고 천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어느 사람 어느 사회 어느 나라든지 이기심 때문에 생명을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고 살지만 그 이기심이 내부의 적이 되어 자멸할 정도에 이르서는 안 될 일입니다.
1968년 하버드대학 2학년 생이었을 때 미국의 작가이자 교육가인 켄트 M. 키스가 쓴 교훈 시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있어 실어봅니다.
역설적 십계명(The Paradoxical Commandments)
사람들은 엉뚱하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라.
People are illogical, unreasonable, and self-centered.
Love them anyway.
좋은 일을 하면 이기적인 속셈이 있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If you do good, people will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Do good anyway.
성공을 하면 거짓 친구와 진짜 적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성공하라.
If you are successful, you will win false friends and true enemies.
Succeed anyway.
오늘 한 좋은 일이 내일 잊힐 수 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The good you do today will be forgotten tomorrow.
Do good anyway.
정직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흠이 잡힐 수 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Honesty and frankness make you vulnerable.
Be honest and frank anyway.
큰 생각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 작은 생각을 가진 소인배에 쓰러질 수 있다.
그래도 큰 생각을 품어라.
The biggest men and women with the biggest ideas can be shot down by the smallest men
and women with the smallest minds.
Think big anyway.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워라.
People favor underdogs but follow only top dogs.
Fight for a few underdogs anyway.
당신이 오래 쌓아 올린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쌓아 올려라.
What you spend years building may be destroyed overnight.
Build anyway.
사람들이 도움을 원해 도와주었는데 오히려 비난받을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을 도우라.
People really need help but may attack you if you do help them.
Help people anyway.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주어도 되려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래도 최고의 것을 주어라.
Give the world the best you have and you’ll get kicked in the te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