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의 공식, 웹툰의 미래 #03

웹툰 분류의 필요성 – ‘장르’가 아닌 ‘독자’를 기준으로

by 이승원

1. 문제 제기: 웹툰은 왜 ‘고르기 어려운 플랫폼’이 되었을까

현재 네이버웹툰 기준 요일별 평균 110여 개, 전체 연재작 800개 이상의 작품이 하나의 공간에 섞여 노출되고 있다. 선택지는 충분하다 못해 과잉에 가까운 수준이다.

겉보기에는 콘텐츠가 풍부해 보이지만, 실제 이용 경험에서는 오히려 이 구조가 선택을 방해한다. 메뉴가 지나치게 많은 식당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선택지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소비자에게는 장점이 아니라 "탐색 비용(Search Cost)"으로 작용한다. 즉, 선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선택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800개 이상의 작품이 동일한 공간에 노출되는 구조에서는 이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를 빠르게 찾기 어렵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가 자연스럽게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웹툰 플랫폼은 이 문제를 ‘알고리즘 추천’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는 탐색 부담을 완화하는 보조적 수단에 가깝다.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과거 행동을 기반으로 유사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하거나 “이건 믿고 봐도 된다”는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진다.

결국 지금의 웹툰은
장르는 넘쳐나지만, 독자를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는 부재한 상태다.


2. 왜 웹툰은 지금까지 분류 없이 운영되었는가

이 구조는 단순한 미비가 아니라, 초기 성장 단계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웹툰 플랫폼은 콘텐츠 사업이면서 동시에 트래픽 사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용자를 하나의 공간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이 수익 구조의 핵심이었다. 가능한 많은 작품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체류 시간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또한 초기에는 이용자와 작가를 동시에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타겟을 나누기보다 “일단 많이 모으는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웹툰 산업은 작품 수 증가와 함께 이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성장 패턴을 보여왔으며, 이는 이 전략이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작품 수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고, 이용자의 취향 역시 매우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에 대해 플랫폼은 ‘분류’가 아닌 ‘알고리즘’으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추천 시스템은 기본적인 분류 구조가 존재할 때 더 높은 정확도를 보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장르 기반 유사 추천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진다.

결국 과거에는 “모아두는 것”이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탐색 비용을 증가시키는 구조로 전환된 상태다.


3. 대안: ‘디지털 매거진’을 통한 소비 구조의 재설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추천의 고도화가 아니라, 플랫폼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핵심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구조”에서
“취향이 모이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일본의 '주간소년점프'처럼 특정 독자층을 기준으로 설계된 매거진 구조는, 콘텐츠가 아니라 ‘독자’를 중심으로 소비를 조직한다.

웹툰 역시 플랫폼 또는 섹션 단위에서 이러한 ‘디지털 매거진’ 구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① 전문성이 곧 IP 확장의 기반이 된다

여성향, 성인향, 특정 장르 충성도가 높은 독자층을 별도의 매거진 단위로 분리하면, 각 플랫폼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단순히 작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굿즈, 특전, 이벤트 등 팬덤 기반 소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이는 기존보다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메인 플랫폼은 대중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애니메이션, 드라마화 등 대형 IP 확장을 위한 ‘쇼케이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즉,
플랫폼 구조 자체가 IP 전략을 결정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② 신인 작가에게 더 유리한 구조

현재와 같은 광장형 구조에서는 하루 수십 개의 작품이 동시에 노출되기 때문에 신인 작가가 주목받기 어렵다.

반면 타겟 독자가 명확하게 모여 있는 매거진 구조에서는 유사 취향 작품 간 연계 소비가 발생하며, 이는 신인이 초기 팬층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노출 경쟁이 아니라, 취향 기반 성장 구조로 전환된다.


③ 실행 가능성: 단계적 검증 구조

이 구조는 전체 플랫폼을 한 번에 개편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장르 또는 사용자 그룹을 대상으로 한 "시범 적용(A/B 테스트)"을 통해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이용자에게만 분류형 UI를 적용하고

체류 시간

작품 소비량

결제 전환율

구독 유지율

등의 변화를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실행 전략이 될 수 있다.


4. 리스크와 한계: 단기 매출보다 중요한 ‘수익의 질’

물론 플랫폼 분리에 따른 트래픽 분산과 단기적인 매출 하락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특히 기존의 대규모 트래픽 기반 광고 구조가 흔들릴 수 있으며, 구독 전환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수익 구조가 일시적으로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한 트래픽의 양이 아니라
"유저 생애 가치(LTV)"다.

모든 이용자를 넓게 확보하는 구조보다, 명확한 취향과 소비 의지를 가진 이용자를 깊게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만들어낸다.

섞여 있는 100만 명의 일반 사용자보다, 특정 플랫폼을 신뢰하고 반복 소비하는 20만 명의 타겟 유저가 광고 기여도와 결제 규모 측면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5. 결론: ‘장르’가 아닌 ‘독자’를 기준으로

웹툰 산업은 이미 충분히 성장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까지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핵심 경쟁력이 된다.

일본 만화 산업은 장르가 아니라 독자를 기준으로 플랫폼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팬덤과 IP 확장을 만들어왔다.

웹툰 역시 이제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을 더 많이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설계할 것인가.


웹툰은 장르가 아니라,
독자를 기준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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