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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Apr 05. 2024

그건 내 안에 있어요. 얼른 찾아보세요.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에 대해서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20분 정도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만져주고,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참 짧은 시간이 지나 헤어질 시간이 되어 눈인사하고, 손을 흔들며 애틋하게 이별하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보시곤 “윤**님이 편찮으시기 전에 참 잘하셨나 봐요. 이 나이대 부부 사이가 이렇게 다정한 분들이 없어요.” 하신다. 나는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왜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까? 남편이 쓰러지기 전 우리 부부 사이는 최악이었다. 그즈음 나는 함께 살아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함께 살아온 20여 년을 돌아보아도 다정했던 날보다 서로에게 무덤덤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참으로 다정한 남자와 참으로 친절한 여자가 만났는데도.          



무덤덤한 세월이 더 많았던 우리 사이. 그런데 나는 어떻게 남편을 이리 다정하게 대할 수 있을까? 남들이 보기에 꿀 떨어지게 다정한 나의 모습은 그저 남들 앞에서 보이는 연기인 걸까?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것과 연결 짓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줄 안다. 주어진 문제와 감정을 잘 분리하기에 인간관계가 비교적 유순하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무에 그리 섭섭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안에 스위치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스위치는 상황에 따라 켜고 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스위치를 바로 찾아서 상황에 따라 켜고 끌 수 있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그 스위치를 찾지 못해 아침의 짜증이 하루 종일 가기도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끊긴 전화 한 통화로 하루를 불안하게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스위치가 잘 보인다. 상황에 따라서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을 참 잘 한다.       


    

남편을 만났을 때는 현재의 남편과 나의 모습에 집중한다. 과거의 스위치는 끄고, 현실 문제의 스위치도 끈다. 오로지 지금 내 앞에 누워있는 남편의 스위치만을 켠다. 그러면 현재 남편의 모습만이 보인다. 병원 침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해 불편함이 많을 남편, 일반식을 할 수 없어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남편, 집이 그리울지도 아니 어쩌면 병원이 더 편해졌을지도 모를 남편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손 잡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남들에게 보이지 싶지 않을 귓밥 청소며 발톱 정리도 해 준다. 반려묘 도도가 궁금할까 봐 도도 사진도 보여주고, 바깥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꽃 이야기도 해 준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봐 주고, 짧게 자른 내 모습이 예쁘지 않냐고 너스레도 떤다. 남편이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내가 다 해 준다. 그럴 때 한 번씩 보이는 남편의 미소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내 목소리에 꿀이 발리고, 향기가 난다. 그 향기는 우리 둘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향기롭게 만드는 듯하다.                


애틋한 눈빛으로 남편을 병실로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나는 다른 스위치를 켠다. 밀린 병원비를 걱정하고, 학원 수업을 걱정하고, 아버지의 전화에 살짝 짜증도 낸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은 다른 스위치를 켜야 할 시간이다. 엄마 육아를 하러 친정에 가야 한다. 다섯 살 아이처럼 해맑은 우리 엄마. 엄마의 얼굴도 쓰다듬어 주고, 엉덩이도 토닥토닥 해주고, 밥 먹다 흘린 입 주변도 닦아주는 엄마 육아 스위치를 켜는 날이다. 엄마 육아 스위치를 켠 그날은 오롯이 엄마를 내 안에 담을 것이다.           


빙이미지크리에이터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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