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먹어 치우는 것만이 존재 이유인, 헤비 소비 괴물로서.
웹소설은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다.
왜냐하면 취향에 맞는 걸 찾기는 다른 것들과 비슷하게 어렵긴 한데.
뭐라도 하나 찾으면 일단 양이 많았으니까.
내가 보는 장르의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200화가 넘었다.
긴 건 1,000화를 넘기기도 하고.
좀 인기 있고 유명하다 싶은 건 400화, 500화가 흔했다.
그런 걸 하나만 찾아도 일주일은 행복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을 누리고 즐길 수 있기도 했고.
그렇다.
소비자로는 아주 행복했던 그것이.
이제 내가 그걸 써야 하는 처지가 되자, 어마어마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저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어서.
쓰다 보니 그럭저럭 내가 할 수는 있는 일 같고.
그저 내 뇌만 열심히 쥐어짜고 손만 열심히 놀리면 되는 일이라.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만 감수한다면 손해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 편을 써내고.
그 한 편을 퇴고하며 고치고.
또 한 편을 이어 내고.
그러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다시 돌아가서 검토하다 엎어서 새로운 걸 쓰고.
어느 순간 느꼈다.
어라, 써야 할 게 수백 편인데 난 왜 아직도 이렇게 극초반부에서만 맴도는 거지?
누군가는 그랬다.
원래 초반부에 독자가 이탈하지 않게 잡아야 하니, 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든 거라고.
처음에 흥미만 끌면 그래도 그다음부터는 조금 쉽다고.
아무리 그래도 5화 정도, 10화 어름에서 자꾸 미끄러져서 돌아가는 게 맞나?
전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은데.
왜 처음에는 반짝반짝해 보였던 게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아무런 광택도 없는 돌멩이 같은 거지?
내가 문제인가?
그럭저럭 써낸 줄 알았던 게 크나큰 착각이었나?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더 좋은 거, 더 재밌는 거,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거.
그런 걸 추구하며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악몽이 되살아났다.
어릴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기만족으로 연재했었다.
그러면서도 댓글 하나가 안 달리네.
한탄하며 속상해하고는 했었는데.
지금 쓰는 웹소설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과거에 잠깐 글을 썼을 뿐.
그 후로 꾸준히 쓰지 못한 채 기나긴 공백기를 가졌다가 돌아왔다.
새로 웹소설을 시작하는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작품을 연재한 적이 없으니, 입증된 적 없는 불안한 지망생이었고.
그런 사람의 글이 조그만 인정이라도 받고 반응을 얻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많은 웹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써내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일인데.
회의감과 자괴감이 물밀듯 밀어닥쳤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만하게 덤볐던 웹소설은 잠시 활력과 희망을 찾았던 나를 다시 끌어내렸다.
어느 순간 이렇게 힘들게 쓴 게 무슨 가치가 있나?
더 이어갈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고.
안 그래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자리에 앉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나는, 포기하고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돈이 없었다면, 지금 굶주린 상태라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태였다면.
좀 더 악착같이 매달려서 끈기 있게 해 나갈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뭐든 포기가 빨랐다.
웹소설도 그냥 그렇게 잠깐 스쳐 가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미루고 미루다 나는 쓰는 걸 포기했고, 그저 소비하는 삶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10화 문턱도 아득바득 기어서 가는데, 이런 주제에 수백 편 웹소설을 어떻게 써.
포기하고 웹소설을 읽고 또 읽다가.
또 어느 순간 이런 거 써보면 재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키보드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또 회의를 느껴 포기하고.
연재를 시작하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사람들이 봐주면 신나서 더 쓸 수도 있잖아.
하지만 아직 분량이 초라한 글에 찾아와 주는 독자는 드물었고.
여러 지표와 데이터를 학습한 내 눈에 내 초라한 연재물의 수치는 오히려 의욕을 깎아 먹는 징표가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멋지고 괜찮은 수준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정말 소비만 해야지.
그렇게 포기하다가도 또 뭔가 써보고 싶은 게 생기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졌다.
참고 참다 그래,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써보자!
그렇게 글로 옮기고, 며칠이 지나면 타고 남은 재처럼 새카만 원고에 절망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걸 참고 수백 편을, 1년도 넘는 연재를 견디고 해 나가는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남들 신경 안 쓰고, 연재할 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만족용으로 써보자.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그럼 대체 왜 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버텨내며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긴 칩거를 끝내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