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에 대한 시도와 실패는 아주 오래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한 번은 업계에 계신 분에게 평가받을 기회를 얻었다.
그때 나는 뭐라도 확신이 필요했고,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알고 싶었다.
안 좋은 말이 나오면 상처받을 게 뻔했지만, 또 온전히 포기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들었고.
함께 플랫폼 론칭을 준비해 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얼떨떨하면서도 기뻤다.
이렇게 혼자 싸우고 고통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일 그것 때문에 괴로웠는데, 어딘가에 론칭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작이니 큰 수익은 못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작해서 조금씩 나아가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잃었던 의욕을 되찾았다.
유료 연재를 위해 우선 플랫폼에 심사받을 기획을 정리하던 시점.
나는 지금까지 혼자 접었다 폈다 편하게 작업하느라 간과했던 점을 깨달았다.
MBTI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P 성향이 강했다.
대충 무엇을 쓸지 시작과 끝은 어떨지 어느 정도 정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쓰면서 채우고 완성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플랫폼 심사를 위한 기획안에는 인물 소개니, 기승전결이니, 기획 의도, 줄거리 같은 게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해보기로 마음먹은 거 없는 의욕 있는 의욕 죄다 쥐어 짜내서 어떻게든 항목을 채워 넣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하루를 내내 문서를 붙잡고 앉아 지웠다가 써내기를 반복했는데.
그렇게 써낸 기획안은 플랫폼 심사는커녕 편집자분 선에서 바로 컷 당해 버렸다.
그런 식으로 구성을 짜놓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어설펐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했으면 됐을 일인데.
그때 나는 계속된 실패와 시도로 너무 많이 지친 상태였고.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쥐어짜 낸 에너지로 하느라 방전 상태였다.
기획안 작업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맨날 5화 10화 쓰다가 포기한 주제에.
론칭해서 실제로 돈 받고 팔기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도 못 하는데.
정말 200화 넘게 쓸 수 있어?
자신 있어?
언제나 그랬지만, 내 약점을 가장 잘 아는 건 나였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해 결국 포기하게 만드는 것 역시 나였다.
결국 나는 다신 웹소설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항복 선언을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웹 개발자로 일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코드를 짜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일을 좋아했다.
재밌었고, 이런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짠 코드에 대한 설계서나 설명 같은 걸 문서로 만들어야 했고.
어느 날은 만들려면 뭘 만들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
여러 문서를 헤집고 묻고 배우며 알아둔 시스템에 대한 기획 문서를 정리해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것들이 끔찍하게 싫었다.
개발하는 이유가 코드를 짜는 게 좋아서였기 때문에 그 반발이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었다면, 어떤 일을 주든 돈 받으니까 당연히 해야지.
그랬을 텐데, 애초에 돈도 돈이지만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개발자를 했던 거라 반감이 더 심했다.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개발은 좋은데.
날 개발만 하게 두지 않고 다른 잡다한 문서 작업까지 시키는 개발 회사는 너무 싫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
재밌고 좋은 일 하려면 싫은 일도 감수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나를 달래고 다독여보려고도 했지만, 안간힘을 써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느라 매일매일 너무 피곤했다.
그러다 결국 코드를 짜는 일조차 짜증스럽게 느껴지고.
다른 더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 떠나야겠단 결심을 했다.
기획안 정리를 하다가 결국 포기해 버린 경험을 하고 보니, 그때 문서 작업을 싫어했던 내가 생각났다.
나는 이런 정리정돈, 기획, 문서 작업 같은 게 정말 안 맞는 사람인가 보다.
이게 왜 이렇게 싫을까?
완성도야 모르겠지만 하면 또 채우고 완성해 내는 건 금방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가 결국 수정을 해야 한다는 피드백으로 이어진 경험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너무 추상적이고 아직 명확하지 않은 영역에 있는 일들이 정리하고 글로 옮겨야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예전에 콜센터에서 관리자로 있을 때는 문서 작업을 부담 없이 했었던 것도 같은데.
그땐 한창 엑셀을 좋아하던 때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업무 양식과 문서를 매일 고민하고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웹소설도 글을 쓰는 거고.
기획안도, 문서 작업도 결국 글로 내용을 정리하는 건데.
왜 웹소설은 스트레스받더라도 쓰는 동안은 몰입해서 쓸 수 있고.
기획안이나 문서 작업은 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정도로 끔찍하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