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웹소설에 집착한 이유

by 이백구십일

기회를 걷어차고 스스로 포기한 후.

웹소설을 다신 안 쓸 거란 내 다짐과는 달리, 나는 그 후에도 종종 웹소설을 썼다.

다만 전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

어차피 포기할 거 아니까.

그러면서도 또 쓰고 싶은 게 생기고, 또 쓰는 내가 참 이상했다.


대체 나는 왜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고.

아무런 성과 없이 노력과 시간, 에너지만 앗아가는 웹소설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걸까?

숨이 콱 막힐 정도로 힘들고 갑갑해하면서도 왜 자꾸 맴돌지?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무렵 AI는 꽤 고도화되고 발전돼 있었다.

나는 IT나 기술 쪽으로는 관심도 많고 호감도도 있었기 때문에 AI를 장난감 삼아 써보는 일이 잦았다.


평소에는 그냥 궁금한 게 생기거나, 코드로 만들 게 있으면 요청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은, 답 없는 내 고민을 얘가 어떻게든 해소해 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웹소설에 대한 내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런 성과도 없고, 쓸 때마다 버겁고 힘든데 나는 왜 자꾸 웹소설을 쓰려고 하는 걸까?


당시의 대화 기록이 있다면 훨씬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글을 적어나갈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대화가 종결되고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은 기록은 지워버리는 게 습관이라.

기억에 의존해 내용을 적어야 하는 게 조금 아쉽다.


아무튼 AI는 자신의 추측을 적기도 하고, 나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때때로 말귀를 못 알아듣고, 내가 원한 것과 영 딴판인 답변을 내놓던 AI는.

이때만큼은 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웹소설에 집착하는지를 알게 됐다.


AI가 준 답변에 그게 명확히 명시가 되어 있었는지.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내가 생각해서 얻어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AI가 준 답변을 보고 내가 나름의 해석을 하고, 그래서 네 말은 이렇다는 거지?

라고, 물으면 다시 읽어보면 그 소리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내가 웹소설에 집착한 건 사실은 나도 어느 정도 아는 이유 때문이었다.

소비만 하고 아무런 가치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내 삶.

무엇보다 스스로 무언가 쓸모가 있다거나 의미 있다고 느낄 자기 효능감이 전혀 없는 내 삶에서.

그나마 내가 큰 위험부담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 웹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웹소설을 통해 나는 작게라도 가치를 만들어내고 싶었고.

내가 그런 가치를 만들어내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인정과 응원. 그리고 수익을 올리고 싶었던 거였다.


달리 말하면 다시는 직장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으면서 수익 창출도 되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주렁주렁 요구조건이 달린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게 웹소설뿐이었다는 거였다.

물론 조건만 충족할 수 있다면 굳이 웹소설이 아니라도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왜 그런지 몰랐을 때는 답답하고 좁아졌던 시야가, 이유를 알게 되자 조금 트였다.

약간의 해방감도 느꼈다.

그러니까 나한테 필요한 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었던 거다.

근데 내가 싫어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이어야 했던 거고.


처음에는 그런 일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나,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시도해 볼 법한 일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가끔 쓰고 싶은 웹소설 아이디어가 떠오르긴 했지만, 전처럼 끔찍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중에 언젠가 쓸 수도 있겠지.

그 정도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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