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한창 붐을 일으키던 시절.
당연히도 나는 오징어 게임을 보는 것에 도전했다.
글로벌 레벨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기를 구가하던 작품이라, 꾸역꾸역 참으며 1화를 봤지만.
끝내 그 너머로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즌2가 나오고 3가 나왔을 때도 이미 내 취향이 아니라고 판별이 난 작품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드라마작가에 관심이 생기고.
다닐 교육원을 정하고 지원서를 넣을 때였다.
개인정보와 별개로 오징어 게임에서 감명받은 걸 적어달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난 오징어 게임을 좋아하지도 않고, 보고 싶지도 않고, 감명받은 건 전혀 없는데.
억지로 지어내서라도 좋다고 할만한 장면을 찾아봐야 하나?
아니, 무슨 오징어 게임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교육생으로 받지도 않겠다는 거야?
반감과 반항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래도 오징어 게임이 내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하차했을 때와 지금은 꽤 시간 차가 있었다.
지금 보면 또 재밌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각 잡고 1화를 켰다.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작품을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매번 콘텐츠 사냥을 다닐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내 취향 참 까탈스럽다.
결국 1화가 끝이 났다.
2화를 볼 엄두는 안 나고, 교육원에 지원하려면 1화를 바탕으로 과제를 해야 했다.
뭐, 감명 깊게 본 장면이 1화에 있다고 하면 되니.
과제를 하기에 무리가 있진 않았다.
문제는, 우리 곱씹고 생각을 반복해 봐도 감명 깊은 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감명에 대한 사전적 뜻도 찾아봤다.
뭔가를 크게 느껴서 새겼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느낌이 아닌 부정적인 느낌도 감명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게 과연 교육원에 원하는 것일까?
첫 과제부터 오징어 게임으로 시작하면 교육 내내 오징어 게임이 예시로 등장할 수도 있는데.
그럼 나는 그 교육을 온전히 받을 수 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과제에는 홧김에 오징어 게임이 왜 내 취향이 아닌지를 마구 적어내다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싸우자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의 온도를 낮추고, 동그랗게 칼질했다.
그 위에는 오징어 게임과는 별 관련 없는 드라마 작가에 대한 내 생각을 덧씌웠다.
이 정도면 좀 반항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제를 했다.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했다 정도의 기준은 되지 않을까?
어차피 심사를 통해 교육생 선발한다고 하니 마음에 안 들면 떨어뜨리겠지.
그런 생각으로 과제 첨삭을 마무리하고.
지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다음 기수 교육을 받거나 하기로 미뤄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첫 단추부터 어긋난 채로 교육받는 건 영 효율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취향이 아닌 오징어 게임 1화 중에서도 그나마 좋은 장면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으나.
동시에 왜 이렇게까지 싫고,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지 고민했다.
답은 명확하고 간단했다.
주인공이 비호감이었다.
1화가 나아가는 내내 주인공은 내가 정말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인간상으로 나왔다.
나는 그런 인물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무슨 선택을 하든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죽든 살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더 볼 마음이 안 들었던 거였다.
예전에 영화 추격자를 볼 때도 이런 비슷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었다.
스릴 있는 추격전. 그래, 알겠는데.
왜 중요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비호감이지?
잡히든 말든, 잡든 말든.
별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그러자 영화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어졌다.
한때 어떤 작품에서는 악역에 매료돼 본 적도 있었는데.
그보다 덜한 자잘한 문제만 있는 캐릭터들이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추격자 때는 그래도 이게 뭐지,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들지?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스릴 있는 씬들은 재밌게 보기도 했는데.
그 사이 더 취향이 협소해졌는지 오징어 게임은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대부분 대단한 주인공이 더 대단해지는 이야기인 웹소설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비호감인 인물에 대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모양이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나는, 다음 교육생 모집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제발 내 취향이 아닌 작품과 관련된 과제가 없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