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학교는 대체 왜 다녀야 할까?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으로 자랐는데.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뭔가 내 선택을 강제하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 굉장히 취약했다.
매우 스트레스받고 반감이 강했는데.
학교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일어나야 했고.
배우고 싶지 않은 걸 배워야 했으며.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숙제까지 해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학교 같은 곳 안 가고 싶었지만.
아직 어린 꼬꼬마 시절에는 그러고 싶다고 그럴 권한이 없었고(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니까).
그럴 용기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경험도 없었다.
수업 시간에 자는 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잘 때에도 칠판과 교과서를 보곤 했지만.
사실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생각이 많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걸 좋아했다.
수업받을 때면 종종 이런 실용성도 없고 관심 분야도 아닌 걸 왜 배워야 하는지 생각했다.
사칙연산 정도야 살면서 쓰일 일이 많겠지만, 로그니 방정식이니 이런 게 의미가 있나?
우리나라 역사야 그렇다 치고.
세계사는 대체 왜 알아야 하지?
나중에 궁금해지면 그때 찾아보고 알아내도 되지 않아?
그걸 떠나서 검색만 해도 나오는 걸 굳이 외워서 시험까지 친다고?
대체 이게 무슨 쓸모야?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꼬마인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 나라에 태어나는 사람이 무수히 많은데.
평가하지 않고는 그 사람이 무슨 능력을 얼마큼 가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걸 하는 거고, 그걸 얼마큼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시험을 통해 줄을 세우는 거다.
그렇게 줄을 세우면 누가 어느 분야에 더 두각을 드러내고, 얼마나 더 똑똑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누군 40점을 받고 누군 90점을 받는다면 후자가 훨씬 똑똑하고 유능한 거지.
어린애들을 그냥 두기만 하면 막살다가 아무런 능력도 발전도 없이 크게 될 가능성이 크니.
기본 교육도 하면서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같은 기준으로 측정해서 인재를 찾는 방식이구나.
요즘 종종 생각하는 거지만 사춘기 흑염룡 시절의 나는 어느 측면에서는 지금의 나보다 똑똑했던 것 같다.
문득 이때 했던 이 평가지표로 기능하는 학습과 학교 생각이 나서 이 에세이를 적는 지금도, 의무교육과 학교에 대한 내 인식은 비슷하다.
어떤 정형화된 수치가 있지 않고선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기는 너무 어렵고.
그러니까 성적표가 필요하다고.
물론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 배우던 별 쓸모없어 보이던 지식이 많은 것들의 기반 지식이라는 것도 안다.
사람들과 자주 부딪치고 만나며 사회성을 함양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그 밖에도 아마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조차 못 하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긴데.
저렇게 학교의 필요성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린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공부했을까?
정답은 아니, 이다.
그 시절의 나는 남들이 뭐라고 평가하든 내 알 바 아니고.
관심도 없는 거 배우기 싫다, 로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점점 더 공부와 멀어졌고, 수업 시간에 더 많은 다른 생각들을 했으며.
나름 나쁘지 않았던 성적은 그대로 곤두박질쳐 하위권에 머물렀다.
공부는 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영역의 일이 되어버렸고.
돈이나 빨리 벌자 이러고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일부 실무 기술과 지식을 배우는 건 나름 재밌기도 했지만, 다른 것들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 내가 머리는 똑똑한데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이러는 건가?
이런 궁금함이 생겼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친구들과 경쟁이나 내기 같은 게 붙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한 학기 정도 시험기간에 안 하던 공부를 좀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성적은 수직 상승해서 최상위권에 들었다.
당시 특성화고등학교 특성상 공부하는 애들이 드물기도 했고.
선생님들이 시험 범위나 문제 같은 걸 거의 떠먹여 주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좋은 성적을 얻었으니 공부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반대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그 후로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좋은 성적을 받은 게 신기하긴 했지만, 딱히 칭찬해 주거나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도 드물었고.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한 결과를 얻자 뭐야, 별거 아니네?
그런 허탈함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조금만 노력해서 공부 좀 해뒀다면.
이후에 하는 것마다 다 막혀대서 파란만장하고 다채롭게 망했던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난 일이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내가 더 배우고 싶거나 관심 가는 게 없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물론 원서를 넣었던 곳은 있었지만,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굳이 그만한 돈을 쓰면서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접었다.
그때도 국가장학금은 있었으니, 가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어떻게든 됐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뭐 다른 거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 포기한 게 너무 많았다.
다른 대안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지금도 여전히 고치지 못한 태도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