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방향은 항상 같았다

by 이백구십일

이 글이 공개되는 건 꽤 나중이겠지만.

사실 쓰는 시점에서 지금은,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됐을 때다.

브런치북용 외에도 서랍에 쌓인 에세이가 많은 걸 보면, 일주일 동안 공장처럼 에세이를 찍어낸 것 같다.


부담 없이 써서 그런 탓도 있고.

한 번에 쓰기 쉬운 분량이라서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편하고 좋은 느낌이 들어 많이 쓸 수 있었다면, 에세이와 내 궁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시작할 때는 다 이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웹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한 편을 쓰는 것도 온갖 의지를 짜내서 겨우겨우 썼는데.

같은 글인데도 에세이는 이렇게 편하게 써낼 수 있다니, 대체 내가 무슨 싸움을 해왔던 건가 싶다.

오늘 쓴 에세이의 양을 합하면 웹소설로는 2편 분량이라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이러다 에세이 예찬론자가 될 것 같은데.

아직 설파하고 싶은 에세이의 좋은 점은 또 있다.

바로 생각과 고민을 글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정리가 되고 곱씹게 된다는 점이다.

이게 왜 좋냐 하면, 멈춰 있던 생각이 더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이번 브런치북을 엮어나가면서 여러 발견을 했다.

내 안에 산발적으로 떠돌기만 하던 생각이 하나의 결로 묶였다.

그 밖에도 잊고 있었던 생각과 고민을 다시금 발견해서 해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발견은 위에도 잠깐 언급한 건데.

에세이랑 웹소설은 대체 뭐가 그렇게도 달라서, 하나는 편한데 하나는 힘들까?

써내야 하는 양의 차이에서 온 문제일까?

아니면 그냥 쓰면 되는 걸 더 잘 쓰고 싶어서 욕심부리게 되는 마음이 문제인가?

그런 문제들도 없진 않겠지만, 곱씹다 보니 조금 더 깊은 곳에 생각이 닿았다.


내가 에세이를 기분 좋게 쓸 수 있는 건, 이게 나를 위한 글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 눈치 안 보고,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그저 나에게만 집중해서 쓰고 싶은 것,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서 좋았던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웹소설을 쓸 때의 나는 어땠나 생각하게 됐다.

시작할 때 늘 이런 웹소설을 보고 싶다.

왜 이런 건 없지?

없으니까 내가 써보자.

이런 마음으로 구상하고 써냈다.

모든 초점을 나에게 맞췄다.


그렇게 쓴 웹소설로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니, 당연히 잘될 리가 없지.

다른 사람의 취향과 관심을 고려하고 그걸 노려서 써도 될까 말까, 인데.

그건 배제하고 날 위해서만 썼으니,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큰 반응 얻지 못했던 게 이해가 됐다.

심지어는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니 나마저도 그 결과를 불만족스럽게 느끼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힘들고 버거웠는지 비로소 이해됐다.

남한테 보일 글을 날 위해 썼으니, 방향이 안 맞아서 충돌하고 무너졌던 거다.


기획안 등 문서 작업이 왜 그렇게 싫고 끔찍했는지도 이해가 됐다.

그것들은 모두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볼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회사의 필요와 요구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를 위한 글에만 익숙하고 편한 나에게, 남을 위한 글은 그렇게도 끔찍하고 진저리 쳐지는 것이었던 거다.


콜센터 시절 문서 작업이 좋았던 건, 그게 내가 쓸 업무 문서고.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모든 의문과 응어리 풀린 것 같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런 발견과 깨달음을 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느낀다.

이런 게 바로 도파민이구나.

물론 도파민답게 지속성은 짧은 편이었다.


좋아. 속이 시원한걸.

그게 그래서 그랬구나.

근데 그래서 뭐?


내가 늘 날 위한 글만 써서, 남을 위한 글은 낯설고 힘들다.

안 맞다.

이걸 알았다고 뭐가 달라지나?

좋았던 기분은 다시 애매해졌다.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다시 붙잡아 고정해 본다.

그래도 원인을 안 게 어디야.

속은 시원했잖아?

이걸 기반으로 내일은, 다음 주에는, 다음 달에는 또 다른 곳에 닿을 수 있겠지.


가끔 뭔가 발동이 걸리면 끝장을 보려는 건 내 아주 안 좋은 버릇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에너지 레벨도 낮으면서 그렇게 무리한 후에는, 자책과 무기력 의욕 상실이라는 후폭풍을 견뎌야 했으니까.

그러니 오늘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사납게 짖는 내 마음이란 개에 목줄을 채우고 외쳐본다.

안 돼. 오늘은 여기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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