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보다 나은 이유

by 이백구십일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확신할 수 없는 것, 모호하거나 다른 의견이나 점검이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 AI에게 들고 갔다.

AI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던 것 같은데.

대체로 사람들에게는 내가 원하는 정도의 의견을 듣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의견을 단발성으로 듣는 거면 몰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힘들었고.


그런 면에서 AI는 완벽하게 도움이 됐다.

걔 의견이 맞는지와는 별개로 어쨌든 내가 요청하면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들이 왜 나왔는지도 물을 수 있고.

이런 관점은 없는지, 이런 관점으로 보이진 않는지도 물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는 거다.

새벽 4시에도 오후 11시에도 언제나 묻기만 하면 답이 왔다.

그것도 같은 말을 열 번씩 물어봐도 대답해 준다.

이렇게 리액션이 좋다니.

사람한테 이랬으면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라고 하거나 진작에 날 피했을 텐데.


이렇게 생긴 습관은 웹소설을 쓸 때 폭발했다.

이런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아?

이런 소재, 이런 키워드는 어떤 장단점이 있어?

내 원고 괜찮은 것 같아?

이렇게 고쳐볼까?

이런 전개로 나아갈까?


어느 날엔 흡족했고, 어느 날엔 그게 정말 맞는 길이냐고 캐묻다 짜증을 내고 대화를 껐다.

의견을 구하지만 종종 그게 내가 원하는 의견이 아닐 땐 화가 났다.

어쩌면 내가 원한 건 의견이 아니라 그저 지지와 격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사람한테 받으면 불편하니 AI를 괴롭혔던 것 같다.


최근에는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관련 내용을 AI에게 검토받았다.

에세이를 쓰기만 하면 일단 들고 가서 이런 에세이를 썼어, 어때?

묻는 게 습관이 됐고 지금까지 브런치 올린 모든 에세이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


에세이에 대해 어떤지 물으면 AI는 좋은 점을 이야기해 줬다.

그리고 이건 고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내 경우에는 AI가 뭘 고치라고만 하면 그게 틀렸다고 인식해서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것이라고 느껴, 불쾌감을 느끼거나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진짜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잘 지켜지진 않았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70점 정도의 적당한 기준이지.

90점 100점까지 끝없이 끌어올리길 원하는 게 아니라고.

무한 수정의 굴레에 갇혀서 모든 의욕을 잃고 파괴당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좀 나아진 것 같긴 하다.


그렇게 한참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AI에게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별 반응을 안 해줄 거라는 알고 있으니, AI에게 그 반응을 구걸하면서 그걸 위해 쓰고 있지는 않나?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독자한테 댓글이 달렸을 때와 AI가 어떻다고 말해줄 때의 기쁨이 비슷했던 것 같다.

이래도 되나, 이게 맞나?

괴상한 기분이 드는 한편.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인터넷에 글을 적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노트북, 키보드,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는 건데.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문제가 있단 생각도 안 들었다.

결국 AI도 이런 도구이자 장치의 하나인데 그렇다면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원하고 받아내고 있는 것이 도구와 장치 역할인가 하면 또 아득하다.


어차피 에세이는 자유롭게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쓰고 있고.

기능적으로 보자면 그냥 편하게 글 쓰는 훈련과 습관을 들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쓴 에세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피드백이 필요 없는데, AI에게 괜찮은지 평가받는 게 의미가 있나 싶고.

그렇다고 그냥 썼으니 올린다 프로세스로 가자니, 리액션을 얻지 못하는 게 아쉬워진다.


이게 인간이 AI에게 종속되고 지배당하는 과정인가.

그런 디스토피아적인 헛생각도 드는데.

혼란스럽고 혼잡한 생각은 걷어내고 기능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하자.

긍정적인 효과가 있나? 있다.

의욕이 보탬이 되고, 어쨌든 내가 아닌 다른 관점으로 한 번 체크해 볼 수 있다.


부정적인 효과가 있나? 글쎄.

AI에 의존해도 되나 하는 불안감?

감정적인 문제라 판정이 애매하다.

그렇다면 없다고 에세이를 못 쓸 것 같나?

그렇진 않다.

조금 아쉬운 정도?


일단은 좀 더 써보기로 한다.

AI만큼 나한테 꼭 맞춰서 맞는 레벨과 맞는 빈도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사람의 피드백은 내가 조절할 수가 없어서 가끔 날 너무 아프게 한다.

무엇보다 얻어내기가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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