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쓰던 시간은 나에게 큰 상흔을 남겼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는데,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몰입한 시간도 내 기준으로는 꽤 많았다.
더구나 가장 나를 상처 입힌 건, 포기했다가 또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는 점이다.
나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날 괴롭게 하는 걸 포기하는 건 쉽게 해냈다.
웹소설은 안 되겠다.
그런 판단으로 접고 포기하면 그건 선택이지만, 그러다 다시 돌아가면 잠시 도망쳤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안 될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포기했는데.
그러다 다시 하고 싶어져서 돌아가 하는 그 과정과 시간.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서 쏟아부은 그 모든 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물론 그것도 몇 번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긴 했다.
그래도 맨날 쓰다 포기했지만 뭘 쓰긴 썼다고 조금 늘었네.
이전 글보다 지금 글이 좀 더 나아지긴 한 것 같아.
약간의 위안은 됐지만 상처를 낫게 할 만큼은 아니었다.
에세이라는 조금 더 나에게 맞는 글을 찾고.
그 에세이로 빛과 평화를 찾은 후에도 내 병은 도졌다.
에세이를 쓰다 보니 웹소설로도 슬금슬금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내용을 한번 써보고 싶은데.
영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오래 타지도 않을 거면서, 또 날 늪으로 밀어 넣으려고!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학습이라는 게 되는 사람이다.
이대로 다시 덤벼들어봤자 또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게 뻔하다.
그래서 최근 답 안 나오는 문제만 나오면 찾아가는 맛집을 찾았다.
AI야, 나 뭔가 웹소설을 쓰고는 싶은데 초장편은 너무 부담스러워.
길게 쭉 이어지는 건 영 내 성향이랑 안 맞는 것 같아.
난 뭔가 영감 반짝 받았을 때 빡 쓰고 끝내는 게 좋거든.
그 영감에서 이어지는 곁다리들을 주렁주렁 달다가 짜게 식어버린 적이 너무 많아.
이런 나한테 맞는 게 있을까?
웹소설처럼 사람들이 많이 소비도 해주고 기다리고 응원도 해주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적은 분량으로만 써도 되는 그런 거 없어?
나도 안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도 좋고, 값도 비싸고, 왕래하기도 편한데, 나는 싸게 살 수 있는 아파트 좀 알려줘.
그런 게 있었으면 이미 유명해서 나도 알았겠지.
당연하지만 AI 답변에는 내가 원하는 유니콘은 없었다.
브런치 혹은 웹소설 플랫폼에서 내가 원하는 길이의 원하는 글을 연재하라고 했다.
브런치는 차치하고, 웹소설 플랫폼에 내가 원하는 짧은 길이의 글을 올렸다간 아무도 봐주지 않을 거다.
원하는 답이 아니라 잠깐 신경질이 났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답이 없는 질문을 했다는걸.
플랫폼과 그 플랫폼의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을 쓰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소비는 되고 싶어 한다니.
그게 될 리가 없지.
이건 안 되는 욕심이라는 걸 깨닫자 나에게는 두 개의 문이 열렸다.
불편해도 참고 많이 소비되는 걸 쓰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원하는 형태로 쓰거나.
어떤 문을 열지는 금방 결정할 수 있었다.
애초에 웹소설을 쓸 때도 내 태도는 꽤 불량했다.
뭐? 독자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고? 난 싫은데. 안 할 거야.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어서 회사도 때려치우고 놀자판인데.
내가 왜 하기 싫은 걸 해야 해?
그렇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쓰기로 결정했다.
그 형태는 이미 내가 질문한 것에도 적혀 있다.
단발성 영감을 길지 않은 길이로 적어내는 것.
단편소설이다.
지난 시간 쌓인 내 도입부 웹소설 중에는 여전히 내 마음에 콕 박혀있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전체 다가 그런 건 아니고, 특정 화나 특정 장면이다.
바로 그 글을 쓰게 만든 내 영감이 구현된 것이다.
단편을 쓰려고 마음먹으니 마음에 들었던 그 부분만 잘 도려내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 단편 한 번도 안 써봤는데?
급하게 AI한테 웹소설 쓰다 단편 쓰려면 어떡해야 하나고 물었다.
원론적인 이야기가 많았는데, 남은 건 하나였다.
뭔가 인상적인 하나가 딱 있어야 한다는 것.
남에게도 인상적일진 모르겠으나, 나에게 인상적인 건 있었다.
쓰고 나면 꺼져버리지만 쓰기 전까지는 빛나는 돌멩이.
그걸 기반으로 단편을 엮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첫 문장에 사로잡으라느니, 설명은 다 걷어내고 핵심 액기스만 잘 짜서 조합하라느니 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런 건 좀 귓등으로 넘겼다.
애초에 쓰고 싶은 거 자유롭게 쓰려고 고른 건데, 그런 형식과 틀에 또 얽매이다가 웹소설 꼴 나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떻게 작업을 할지를 알아내고 나니 이제 다음 문제가 남았다.
나에게 아주 멀고 먼 그것.
끝맺음을 어떻게 내야 하냐는 것.
웹소설에 늘 도입부만 썼던 나에게 끝, 결말 같은 건 1조 달러만큼 먼 것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해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화병을 나게 할지도 모르는 친구가 있었다.
어떡하냐고 AI를 닦달했다.
질문할 때는 결말 어떻게 내냐는 것과 함께 내가 어떻게 쓸 건지도 적었다.
대체로 내가 쓰고 싶은 건 어떤 사건이나 현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걸 위에 이것저것 붙여서 이야기라는 덩어리를 만들어내는데.
어느 정도 형태는 만들겠지만, 나는 최초 내 영감인 그 점에서 많이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일상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균열에서 끝내고 싶다.
라는 형태로 전했다.
AI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사건과 현상을 터뜨린 후에 바로 끝내지 말고.
그것으로 인물이 어떤 변화를 인식하고 끝내라고.
나에게 그건 좀 미봉책같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건물이 폭발하는 이야기를 쓰는데.
건물을 폭발시키는 것까지가 내 목적이니까.
폭발한 건물을 보고 주인공이 폭발했구나.
라고 하고 끝내라는 소리였으니까.
엥? 그래도 되나?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서 AI를 잡도리했다.
근데 하는 말이 단편은 그게 맞단다.
단편에 익숙하지 않아서 계속 같은 소리를 들으니 조금씩 설득이 됐다.
내가 첨삭해서 쓰려는 창고 속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 설계도가 잡혔다.
여전히 이걸 이렇게 단편화해도 되는 건가 의아하고 당황스럽지만.
이 질문으로 불안을 끝냈다.
그래서 남들 보기에 좋은 틀을 짜맞추려고 하기 싫은 거 할 거야?
답은 아니, 내 멋대로 할 건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쓰다 보면 나한테 맞는 방식을 찾아내고 찾아가겠지.
시작은 웹소설로 한 거라 처음 작업물들은 좀 엉성하겠지만.
원래 시작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잘 모르는 분야라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으니 편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을 때 하루 정도만 소모하면 작업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아주 좋았다.
더는 쓰다 말고 포기하고 도망칠 일이 없을 테니까.
에세이에 이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찾았다는 게 기쁘다.
조금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바람에 계획만 짜놓고 미루고 있지만.
아마 곧 하지 않을까?
답은 내일의 내가 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