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전에 쓴 글 중에 쓰고 나서 진짜 좋아했고 마음에 들어 했던 게 있다. 웹소설로 시작했다가 결국 끝내지 못한 여러 개 중의 하나인데, 그래도 좋아했던 그 부분 때문에 그나마 조금 더 나아가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나는 쓰고 나서 혼자 흥분하고 좋아 날뛰긴 했지만 내가 그걸 왜 좋아했는지 명확하게 알진 못했다.
어렴풋하게 추측하기로는 설계하고 구상하고 들어간 게 아닌데, 쓰는 나도 모르게 쓰다 보니 넣게 된 반전 요소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편 포맷으로 첨삭해서 올릴 예정이기 때문에 스포를 할 순 없지만, 의도치 않게 내 취향에 맞는 반전이 들어간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 왜 그게 좋을까? 어떤 점 때문이지? 아니 그런 것보다 내가 그때 느낀 그 기분 좋은 감정을 다시 느끼려면 이런 글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내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걸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차츰 고민의 지점이 변했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AI를 찾아갔다. 사실 정말 알려줄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럴 수 있는 영역인지 확신이 잘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략 내가 어떤 부분이 좋았고, 이걸 내가 왜 좋아하는지와 이런 걸 또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AI와 몇 번의 대화 끝에 나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받았다. 머리가 약간 띵하기도 했다. 우선 말해두자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수준이지 정확한 정답을 얻진 못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고 캄캄함만 가득하던 때보다는 낫긴 하다.
아무튼. 대화 결과 내가 그 글이 마음에 들었던 건 반전 때문이 아니었다. 그 글 외에도 또 기억에 남는 몇 개 글의 예시를 얘기하고 대화를 이어갔었는데. AI가 말하기를 이 글들의 공통점이 보인다고 했다. 바로 뭔가 잘 맞물려 있는데 틈 하나 생기고 균열이 생기는 이야기들이라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맞았다. 내가 예시로 든 것들에는 다 엇갈리는 말이나 상황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게 어떨 땐 반전처럼 적용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뭔가 기묘하게 맞물린 듯 아닌 듯 균열이 있는 걸 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모르던 내 취향을 기계가 발견하고 알려주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싶다가도, 왜 나 스스로는 이런 걸 생각해 내지 못하고 발견해 내지 못했을까 싶었다. 뭔가가 좋다는 건 감각적으로 바로 알 수 있는데. 그게 왜 좋은지 혹은 왜 싫은지 명확히 찾아가서 알아내는 게 힘들다는 게 참 묘했다.
특히 그게 남이 쓴 것도 아니고 내가 쓴 것일 때는 그 묘한 기분이 더 강했다. 내가 쓴 건데 왜 내가 모르지?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것도 느꼈다. 이럴 때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복잡한 것 같다. 보고 딱 좋다 싫다는 금방 구별해 내면서 그걸 깊게 파고들고 뜯어내려고 하면 무슨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하게 뚫리지 않는다니.
그래도 그 벽을 뚫을 도구가 생겼다는 건 좋은 점 같다. 답 안 나오는 상황에 고민하고 감정적으로 굴고 그래봐야 풀리는 건 없으니까. 다만 이 도구가 매번 속 시원하게 정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는 점은 좀 아쉽다. 이렇게 내 취향을 해부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몇 번 더 다른 거로 시도를 해봤는데. 첫 시도에서 얻은 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그래도 뭐라도 하나 얻은 게 다행이다 싶다가도, 기계 주제에 왜 일관된 결과를 못 주고 복불복으로 기복을 타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처음에 AI랑 얘기하면서는 그래, 맞아! 내가 그런 걸 좋아했어! 이런 점이 좋았던 거구나! 흥분하면서 이제야 알겠구나. 유레카! 이런 느낌이었는데, 며칠 지나 반추하면서 이 글을 적으면서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뭔가 알 것 같은데 모르겠다. 희미하게 실마리는 잡은 것 같은데, 아직 엮은 줄기를 들어내 실체를 확인할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몇 번 더 AI랑 싸우고 입씨름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지금 감이 오는 정도만 가지고 단편소설 쪽 작업을 몇 번 하다 보면 체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이때 AI한테 얘기했던 이야기 중 일부를 단편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결과 느낌의 단편을 몇 편 새로 써내기도 했고. 이제 막 실마리를 잡은 처지라 뭔가 단편들이 다 비슷한 결 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자가 복제 느낌이 나는데. 또 한 결로 통일이 되었다는 점에서 내가 뭔가 한 점을 찾아서 엮고 있긴 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이 묶음을 연작 형태로 공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