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는 참 재밌는 곳이다. 누군가는 AI가 자기 일자리를 뺏어서 결국엔 돈을 못 벌고 굶어 죽을 걱정을 하지만. 또 누군가는 AI 발전이 보편적인 기본 소득(UBI)을 유발해 노동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전자야 워낙 예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지만 후자는 웬 괴상한 소리인가 싶어서 조금 찾아보게 되었다.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고 정확히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디테일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보니 논리가 비슷하긴 했다. AI 발전이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것이고. 그렇게 생산 단가가 낮아지면 판매가도 낮아지니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거란다. 그러면 정부는 마음 놓고 돈을 찍어내서 풀 수 있을 거라는데, 그렇게 정부가 찍어낸 돈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져도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라는 게 UBI란다.
말이 되는지는 차치하고 일 안 하고도 허공에서 떨어지는 돈만으로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니, 큰 욕심 없는 나에게는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AI가 발전해서 그게 탑재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해 모든 일을 한다고 쳐보자. 그러면 정말 생산성이 향상되긴 할 거다. 하지만 그 공장을 소유하고 로봇을 가진 기업이 할 수 있다고 과잉 생산을 해서 판매가를 낮출까? 글쎄, 나라면 안 그럴 것 같은데.
최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기 위해 로봇의 수를 줄이고 공장의 면적을 줄이고 투입되는 재료를 줄여 효율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돈을 무한정 풀어낼 수 있는 디플레이션까지는 절대 못 갈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본주의에 절어 있는 나라서 돈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걸지도. 근데 생산자가 굳이 과생산해서 손해 보는 짓을 하는 건 영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는다.
보다 보면 나처럼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면 반박으로 그렇게 로봇이랑 AI가 다 대체하고 사람들은 돈 못 벌면 다 죽으라는 건데. 사회와 정부가 그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으니 기본 소득을 시행할 거라는 소리였다. 그런가 싶다가도 그렇게 형편 좋게 흘러갈 리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되면 좋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건지는 이해가 안 되는 논리와 주장들을 흘려보내다가, 심심하던 차에 이 주제를 가지고 AI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찾게 됐다. AI로 인한 생산 과잉 촉발이 기본 소득을 초래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고. 어느 게 이해가 안 되는 건지 이야기하자 AI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AI가 맨날 찔리는 정곡 타령을 하며 설명해 준 건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좀 더 이해됐다. AI 발전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머지않은 미래에 AI가 사람보다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될 것이므로 대부분의 일은 AI가 하게 될 거다. 그렇게 자리를 잃고 표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여러 문제가 야기될 게 뻔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지금이야 직업을 가져야 하니 평판도 중요하고 법과 도덕을 지켜야 하는 게 어느 정도 강제되지만, 직업을 잃고 미래를 빼앗겨 뒤가 없어진 사람 중에는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문명인으로 살던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없어 살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야만인이 되지 않을까? AI는 이런 사회 혼란과 질서 파괴를 막기 위해 기본 소득이 지급될 수 있다고 했다. 도덕과 규범을 지켜야만 살 수 있는 돈이 지급된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문명인처럼 살기 위해 노력할 거란 이야기였다.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근데 그 돈을 정부가 다 마련할 수 있을까? 무한정 돈을 찍어내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의문을 제기하니 AI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무한정 돈을 찍어내는 건 잘못된 방법이고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대신 AI를 정부 등 공공이 소유하고 활용해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될 거라고 했다. AI가 정말 인간을 대체해 모든 서비스와 생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부가 이를 소유하고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형태로 간다고 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근데 이러면 시민이면 다 제공되는 서비스와 생산품이니 굳이 돈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졌다.
돈이 필요 없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아서 쓰는 삶. 어디서 많이 듣고 보던 거 아닌가? 바로 공산주의 말이다. 내가 공산주의가 생각나 기분이 나쁘다고 했더니 AI가 일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바로 부패해서 비리를 저지르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멋대로 휘두르려는 독재자의 존재다. 그 독재자가 없이 AI를 활용해 시스템을 만들면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최대화할 수 있는 구조가 될 거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없고 AI가 원리 원칙에 따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움직인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은 모든 시민이 참여해 투표를 통해 실시간을 결정할 수도 있겠지. 근데 과연 점증적으로 발전하게 될 사회에서 기득권이 자신들 권력을 내려놓고 AI나 시스템에 지배당하는 걸 용인할까? 누군가 시스템을 만들고 마스터 권한을 소유해서 왕처럼 군림하는 세상이 되진 않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고도화된 AI가 있는 미래로 간다면 모를까, 조금씩 발전한다면 법과 규제로 틈을 만들 수 있고 누군가는 욕심을 낼 텐데.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으로 잠깐 빠졌지만 금방 나왔다. 어차피 생각해 봐야 답이 없는 문제 같으니까. 다만 어쩌면 나중에는 국가보다는 AI를 활용한 생산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나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니, AI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기본 소득이 필요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과 악용 소지가 너무나도 넘쳐 보이는 부분들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그럼 기본 소득 외에 다른 대안은 없어? 라고 하니 물론 있다고 했다. AI가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겠지만, 일부러 인간만 할 수 있도록 제한된 일을 만들고. 그 일을 하면 소득을 얻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니 지금과 비슷해서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면 그냥 돈을 주는 거나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돈을 주는 거나 약간 번거롭게 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비슷했다.
이런저런 더 파볼 곳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AI와 대화는 이 정도 선에서 멈췄다. 미래의 모습을 조금 예상해 보고 이유를 찾는 건 재밌었지만, 이럴 수도 있다 정도지 꼭 이렇게 될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다만 이제 한물간 유행어처럼 멀게 느껴졌던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조금 피부로 와닿게 된 것 같다.
단지 예상이지만 AI 발전은 뭐든 AI와 로봇만 있으면 대량 생산이 가능할 테니 탈 희소성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돈이 큰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오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지금까지 현대사회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자본주의가 유명무실해질 텐데, 그 후의 세상이 어떨지 사실 감이 잘 안 왔다. 뭐, 닥치면 또 닥치는 대로 살겠지만. 그래도 일 안 하고 놀고먹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아, 그 UBI 얘기를 봤던 곳에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곧 AI 때문에 일 안 하고도 놀고먹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테니 죽지 말자. 버티면 유토피아다. 세상에 좋기만 한 건 없겠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응원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