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유롭고 편하게 에세이를 써대다가, 갑자기 뭔가 반짝 쓰고 싶은 게 생겨서 요 며칠 단편소설을 썼다. 첫 단편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두 번째 단편이 길이도 길어지고 이래저래 헤매고 고민하는 바람에 작업시간이 길어졌다. 문제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뭔가 오늘 이걸 한 방에 끝내버려야 속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도입부만 써놓고 잠시 끊었다가, 전반부를 쓰고 나머지는 나중에 해야지 했었는데. 뭔가 오늘 감을 잡았을 때 다 이어서 쓰지 않으면 제대로 끝을 낼 수 없을 것 같고 감을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 없는 생각인데 그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전에도 뭔가 이야기를 적어낼 때면 처음에 쓸 때까지만 해도 재밌게 의욕적으로 쓰다가도 하루가 지나거나 다음 편으로 넘길 때면 뭔가 맥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다 더는 쓰지 않고 포기했던 게 많았는데, 이게 뭔가 트라우마처럼 팍 떠오르니까 자연스럽게 키보드 앞에 앉게 됐다.
전반부를 뽑아내면서 거의 하루의 기력을 다 썼는데, 잠깐 쉬었다고 해도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온 상태가 아니었다. 잘 써질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긴 했다. 사실 별로면 그냥 날려버리고 다시 쓸 마음으로 임한 거긴 한데. 후반부를 기대보다 만족스럽게 뽑아내고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되는데, 결말에 턱 막혀버렸다.
그동안 뭔가 소설이나 이야기를 쓸 때 내가 짧은 이야기를 썼던 적은 없었다. 대부분 장르 소설이나 웹소설이었으니 당연히 장편을 넘어선 초장편이었으니까. 그렇게 긴 이야기를 쓸 자신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그 장르에는 그게 기본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첫 장편은 그냥 느낌대로 짧게 후루룩 써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두 번째 단편에서는 결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에 빠졌다. 이런 걸 고민해 본 게 처음이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결말 버전을 다섯 개나 써놓고서야 그나마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뭔가 전반부 후반부 부족한 점은 있지만, 내 마음에 들게 내가 쓰려던 건 써내려 왔는데 결말이 이것도 뭔가 아닌 것 같고 저것도 뭔가 아닌 것 같아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마지막에 선택하게 된 결말도 100%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대로는 영영 끝을 못 낼 것 같아서 적당히 고른 거기도 하다.
가끔 나는 의욕이나 욕심이 너무 과해서 아직 내가 해낼 수 없는 건데도 그 이상을 바라기도 한다. 두 번째 단편을 쓰면서 그런 성향이 툭 튀어나왔던 것 같다. 겨우 두 번째 단편을 쓴 거면서. 조금 엉성하고 어설퍼도 일단은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다음에는 더 나아지겠지. 그런 마음이 필요한 건데.
당시에는 오늘 이걸 무조건 끝장을 내고 싶고 속 시원하게 자고 싶고, 더는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 구상이 돌아가면서 자는 시간이 미뤄지는 일을 안 겪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누가 빨리하라고 채찍질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시야가 좁아져서 몰린 거지. 그래도 돌이켜 보면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게 조금 새롭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갔다는 징표 같기도 해서.
무엇보다 내가 결말을 고민하는 날이 올 줄이야. 맨날 시작한 이야기 끝내지 못해서 알게 모르게 죄의식을 가졌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거의 무슨 이야기를 펼칠 때마다 어차피 결말까지 가지도 못할 텐데. 스스로 그렇게 판단하고 시작한 적도 많았다. 근데 단편으로 쓰게 되니까 이래저래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게 됐다는 게 조금 뿌듯하기도 하다.
이렇게 마무리한 경험이 많아지다 보면 나중에는 조금 더 긴 이야기도 자신감 있게 끝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된다. 돌아보니 이렇게 뿌듯하고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것과는 달리, 무리해서 평소보다 긴 작업을 끝낸 반동이 꽤 갔다. 한동안 매일 몇 개씩 써대던 에세이도 잠시 멀리하며 쓰지 않게 될 정도로. 이렇게 의욕이 꺼지나 싶었는데 그래도 조금씩 회복이 되기도 했고. 에세이는 그냥 있는 생각 그대로 꺼내서 쓰는 탓인지 별 무리가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발 다음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루 만에 끝장 보겠다고 무리해서 덤벼들고 탈진해서 쓰러지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강철 체력도 아니고 오히려 좀비 수준의 저질 체력이면서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열심히 매달린 게 생겼고, 그걸 끝냈다는 게 대견하기도 하다.
단편들은 잠시 공개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지만, 곧 브런치에 올릴 예정이다.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데. 이렇게 뭔가 내일을, 미래를 궁금하고 기다릴 날이 있다는 게 새삼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