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도 생각도 모두 중구난방에 제멋대로인 내 브런치 글들에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모두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만큼 휘갈기고 두 번 보지 않고 올린다는 거다. 예의상 부끄럽기 싫으니 최소한의 맞춤법 검사 정도는 하지만 퇴고하며 교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필휘지에 재능이 하늘에 닿은 천재니까 퇴고와 수정 따윈 필요 없어 그런 생각은 아니고, 정확히는 그 반대의 이유로 퇴고 작업을 하지 않고 초고만 올리고 있다. 뭔 글만 열고 쓰다 보면 웹소설 타령을 해대는지 이제 웹소설 언급 좀 그만하고 싶은데, 이건 웹소설 얘기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
브런치에 에세이들 쓰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웹소설 쓰면서 무슨 트라우마 내지는 PTSD처럼 나한테 너무 많은 영향과 상흔을 남긴 것 같다. 아무튼. 웹소설을 열심히 쓰던 무렵 나는 초고를 쓴 후에 다음 날 다음 회차를 쓰기 전에 이전 회차를 쭉 읽으면서 퇴고하고 수정했다. 확실히 초고를 퇴고하며 수정을 한 후에는 여러모로 나아지는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초고 쓰는 것보다 퇴고 작업이 더 진이 빠지는 짓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왜냐하면 퇴고만 하고 써야 할 다음 회차를 안 쓰게 됐거든.
아득바득 이를 꽉 깨물고 의지를 짜내서 잠깐 휴식 시간을 갖고 다음 회차를 쓰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정하다가 기진맥진해서 꼴도 보기 싫어졌다. 웹소설은 초반에는 거의 매일 연재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려면 습관부터가 하루에 최소 1회차 가능하면 2회차분은 쓰도록 훈련하는 게 기본인데, 하나 쓰고 퇴고하다 지쳐서 며칠을 쉬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때 작업하던 걸 던져버리고 포기했다. 그 후에 다시 작업을 하게 됐을 땐 맞춤법 검사 정도만 하고 퇴고는 안 해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니 어깨가 한결 가벼웠고 도중에 포기하긴 했지만 퇴고한다고 계속 도돌이표 찍을 때보다는 더 나아갔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고 효율이 있는 법. 나에게는 퇴고하며 글을 더 다듬는 것보단 하나라도 더 쓰는 게 훨씬 더 잘 맞았다. 애초에 내 실력이 대단하고 지켜야 할 입지가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뭣도 없고 이제 쓰면서 배우는 단계인데 무슨 마스터피스를 만들겠다고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스터피스는 장인의 손에서 나오는 거지 수습 손에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 수습인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뭘 하나 더 뾰족하고 예리하게 깎기보단 하나라도 더 쓰고 하나라도 더 만들어서 더 배우고 경험하는 게 나아 보였다. 이건 특성상 최소 200화가 넘는 웹소설 작업을 할 때였기 때문에 더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웹소설 독자는 글을 꼭꼭 씹어 읽는 사람이 드물다. 어떤 사람들은 지문을 다 무시하고 대사만 읽으며 넘기기도 하는데, 한 화 한 화에 힘을 주는 건 나에게 너무 고문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형성된 습관이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면서도 이어져서 지금도 퇴고하지 않고 초고만 적당히 맞춤법 검사만 해서 올리고 있다. 웹소설과 달리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고 완결성을 가졌으니, 조금 더 때 빼고 광내는 게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 그러다 편하고 좋은 취미라고 생각하게 된 브런치에 에세이 쓰는 게 힘들고 버거운 일이 될까 봐 무서웠다.
에세이는 브런치 시작하면서 올해부터 쓰기 시작한 거니 뭐 하나라도 많이 쓰고 하는 게 여러모로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고. 물론 쓴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고 이건 정말 잘 정리해 두고 싶다 그런 게 있으면 좀 정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은 있지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아, 단편소설 써두고 안 올리고 있는 건 퇴고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있긴 하다. 근데 그 단편소설 하나 쓴다고 끌어다 쓴 에너지 때문에 거의 일주일을 아무것도 안 쓰고 쉬기만 했다는 걸 생각하면 안 그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딘가에는 초고든 퇴근 큰 에너지 들이지 않고 숨 쉬는 것처럼 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니면 오히려 그런 작업에서 더 에너지를 얻게 되거나.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면 글을 좀 더 행복하게 오래 잘 쓸 수 있게 됐을까? 부질없는 생각이긴 한데 조금 아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