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에세이 쓰다 우울해짐

by 이백구십일

감정 중에서 나한테 가장 익숙하고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우울함이다. 그래서 그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다룬 에세이를 쓸 마음을 먹었고, 이왕 쓰게 될 거 같은 감정을 갖고 쓴다면 브런치북으로 엮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감정을 중심축으로 한 에세이를 쓸 생각이었는데, 첫 글이 생각보다 내 마음에 들게 나왔다. 좀 더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문제는 그 좋은 느낌을 이어갈 두 번째 글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막막했다는 거다. 시간순 흐름으로 넘기자니 기존에 썼던 브런치북이랑 비슷한 느낌인 데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계속 우울함과 우울함이 반복되다 우울하고 우울한 에세이가 될 것 같았다. 계속 고민하다가 우선은 우울함에 대한 에세이를 여러 개 써놓고 나중에 순서에 맞춰서 정리를 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첫 글 이후로 두 번째 글을 쓰기까지 일주일도 넘게 고민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졌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사실 처음에는 시간과 감정을 연결해서 뒷이야기를 이어보려고 했는데, 우울이랑은 전혀 관련 없는 가정사를 적게 되어서 나중에 따로 쓰자 하고 서랍에 뒀다. 그 뒤로는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주 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문장과 단어를 건져서 글로 뽑아내는 건 쉬웠다. 늘 걱정하던 분량이 짧으면 어쩌지 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가라앉아 있던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정리하는 동안 과거에 내가 느꼈던 감정도 돌아왔다는 거다. 다른 감정이었다면 별문제가 안 됐겠지만 그게 우울함이다 보니 금방 사라지지 않고 계속 안에 남아 누적되는 느낌이 들었다.


두 개 정도 에세이를 쓴 후에야 나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우선 안 그래도 우울함을 다루는 글이라 딥할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바닥까지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왠지 이 에세이는 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괜히 의욕적으로 덤볐다가 무리했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다. 일단은 오늘은 이만하고 접자. 그렇게 정리를 했는데, 여전히 떠나지 않은 감정이 늪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모든 게 부질없는 것 같고, 에세이를 써봐야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가벼운 충동일 뿐이었지만 그냥 브런치 다 정리하고 그만둘까 그런 생각까지 했다.


어쩐지 무거운 몸. 아무 의욕도 나지 않는 마음.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최소한으로만 움직였다. 꼭 퇴사를 막 했을 때처럼. 조금 회복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 브런치북 계획은 접어야겠다. 였다.


우울함을 쓰다 보니 내가 미뤄놓고 눌러놨던 우울함이 불쑥 솟아올라 같이 놀자고 손짓하면서 갈 때가 됐는데도 떠나지 않았다. 후유증이 너무 심각해서 위험신호를 조금 더 늦게 알았다면 정말로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다 지우고 더 깊은 동굴로 떠날 뻔했다. 그러면서 에세이를 쓴 후 왜 이걸 올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알게 됐다.


그 에세이에 쓰인 감정과 생각과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브런치에 적은 모든 글이 대부분 그저 일기 수준의 내 생각과 생각의 나열 정도지만. 우울함을 담은 에세이는 그보다 더 개인적이고, 누군가 지나가다 우연히 본다면 좀 인상을 찌푸릴만한 내용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고 적었던 글을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앞으로도 나와 가깝고 내가 잘 아는 감정이라고 우울함을 다루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껏 브런치에 에세이를 적으면서 편하게 쓰고 싶은 걸 자유롭게 다 다뤄왔었고, 어떤 날은 생각이 정리되고. 또 어떤 날은 감정이 정리되고. 답을 찾지 못했던 생각과 고민에 답을 얻기도 했는데. 처음으로 긍정적인 발견이 아니라 부정적인 발견을 한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그것에 너무 깊이 매몰되지 않고 금세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게 다행스럽다.


순간 아, 예상했던 그 의욕 저하와 작심삼일의 끝이 온 건가 했는데, 무사히 잘 넘긴 듯하다. 이 일을 겪기 전에 미리 한가득 쌓아놓은 글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뭔가 관둘 땐 관두더라도 예약 발행 걸어둔 건 다 발행한 후에 떠나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정리하는 거야 잠깐이면 가능하니까. 그 생각이 그만둘 마음보다 더 강했으니까.


근데 우울함을 남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발행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후. 다른 에세이들은 뭔가 공유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이 있었던 건가 생각해 보게 됐다.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우울함은 발행하기 싫었고 다른 에세이들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던 걸까?


자주하는 생각인데, 내 마음인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람 마음 다 어렵다지만, 난 내 마음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딱히 전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걸 누군가 보게 되더라도 괜찮은 것과 싫은 것의 차이일까? 에세이를 쓰다 보면 언젠간 이에 대한 발견도 하게 되겠지? 아니어도 뭐, 또 쓰고 싶지 않아 지는 게 생기면 안 쓰면 그만이긴 하다. 그럴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게 참 다행이다.


P.S.
글에는 우울 에세이라고는 쳐다도 안 보고 단 하나도 안 쓸 것처럼 적었는데, 마음에 들었던 첫 우울 에세이는 발행할 예정이다. 이미 예약 목록에 걸려 있어서 어쩌면 이 글보다 먼저 발행될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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