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머릿속에선 반짝였는데

by 이백구십일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가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노트에 계속 무언가를 끄적이길래 물었다. 뭘 그렇게 쓰는 거야? 친구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뭉개려고 했지만 계속 물으니 답했다. 자기만의 소설을 쓰고 있다고. 처음엔 우와 너 대단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랬고. 그다음에는 나도 해보고 싶다고 알려달라고 했던 것 같다.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그 후로 진짜 어떤 과정과 생각을 거쳐서 나도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사라졌지만, 노트에 자기 세계를 펼치는 친구가 멋져 보였고 재밌어 보여서 무작정 따라 했던 것 같다. 그게 내 첫 글이었다.


친구도 나도 판타지 소설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러다 보니 둘 다 판타지 소설을 썼다. 나는 주로 현대 판타지를 썼다. 그때는 뭔가 경험도 없고 생각나는 걸 그대로 쓰다 보니 현실 배경에 판타지적 상상을 가미한 게 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몇 시간이 노트에 끄적끄적 무언가를 적어나가곤 했다. 펜을 쥔 손가락이 아파도 참고 머릿속에 떠오른 걸 옮기기 바빴는데, 손으로 적어내는 것보다 생각의 속도가 더 빨라서 늘 답답했다. 그래서 좀 더 빠르게 쓸 수 있는 키보드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훨씬 수월하게 쓰고 싶은 걸 써나갈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취미처럼 쓰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꼈고 흥미가 있었는데, 쓰다 보니 나도 내 책을 갖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궁금했다. 가깝게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인터넷 연재처에 연재를 해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는 종종 재밌다고 다음 편을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연재처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저 혼자 쓸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훅훅 썼는데, 연재하게 되면서부터는 글을 쓰는 게 괴로워졌다. 반응이 없으니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재밌게 썼던 그 글이 재미없게 느껴졌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나는 글을 더 써나가기보다 글을 더 잘 쓰는 방법들을 찾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생각 없이 쭉 밀고 나가던 이야기들은 늘 조금 나아가다가 아,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안 좋아할 것 같은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잘못 쓴 것 같다. 수없는 방지턱에 막혀 좌초됐다. 잘 쓰려면 잘 쓴 글들을 많이 봐야 한다는 말에 여러 명작을 봤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보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난 재능이 없나 보다. 글렀네.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를 접어버리고 포기했다가도, 또 어느샌가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며 이야기를 펼치고, 또 별로인 것 같아 접었다. 그렇게 아주 많은 시간을 깔짝깔짝 시작했다 접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죄책감이 쌓였고 패배감이 짙어졌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해도 끝은 낼 수 없는 사람이구나. 스스로 낙인을 찍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일생의 역작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덤볐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꺼내놓기만 하면 무언가 대단한 게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선 반짝였던 게 내 손을 거치자 볼품없는 돌멩이가 됐다. 어떤 날은 한 편을 쓰자마자 알았고, 또 어떤 날은 10편을 쓰고야 알게 될 때가 있었다.


나는 늘 반짝였던 원석을 돌멩이로 만들어버린 것에 후회했고, 자책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뭔가 쓰고 싶은 게 생기면 잠깐 발을 담갔다가 금방 떠나버리는 떠돌이였다. 장인 명장은커녕 숙련공도 아니고 계속해서 수습생 신분을 반복하는 사람 정도겠지. 그런 사람 손에서 세공이 제대로 될 리도 없고, 지금 손에 쥔 게 보석인지 돌멩이인지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할 건 뻔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도 아니면서, 여전히 수습과 초보 언저리를 빙빙 돌면서 취미처럼 쓴 글이 마스터피스가 되길 바랐다. 그게 얼마나 큰 욕심이었는지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깨달은 후에도 뭔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또 언제나처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이번엔 다를 거야.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럴 때 보면 나한테 가장 가혹한 건 내가 아닌가 싶다. 내 글에 어느 정도, 아니 큰 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흠이 보이거나 느껴지면 이건 글렀고, 나는 글렀다로 이어지는 게 참혹했다. 부족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부족한 걸 넘기지 못하는 게 참 이상했다.


아주 처음에는 그냥 내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흔히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많이 읽어서 보는 눈을 길러야 하고, 많이 써서 쓰는 능력을 향상해야 하고. 그 모든 것에 많은 생각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싶다. 근데 보는 눈과 쓰는 능력이 엇박자가 되면 그것만큼 괴로운 고문이 없다.


쓰는 능력과 보는 눈은 비례하지 않아서, 눈은 꼭대기에 달렸는데 쓰는 글은 저 아래 산골짜기에 고여있으면 나처럼 자기 비하와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내가 보기에도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에라이 접자, 가 너무 쉽게 되고. 글을 한 번 쓸 때도 너무 많은 생각들이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 개입한다.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차라리 내가 글을 별로 안 봤더라면, 보는 눈이 발바닥에 달려서 내가 대충 써도 내가 쓴 글에 내가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절대적인 퀄리티는 부족하더라도 나 스스로 만족하고 쓸 수 있었더라면 좀 더 꾸준히 많은 글을 재밌게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계속 쓰고 많이 썼을 테니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이긴 하다.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그건 내가 부족한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걸 계속 되뇌고 이해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복이야 당연히 있지만 한참 전에 쓴 글과 최근에 쓴 글을 보면 그래도 아주 밤톨만큼은 나아진 것 같다고 체감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조금씩 어깨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하고, 그러다 욕심이 불쑥 나면 거기에 잠시 휘둘리기도 하면서 보내다 보면 언젠간 더 나은 글을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참 웃긴 건, 글 쓰는 게 그렇게 괴롭고 버겁고 힘들어서 늘 도망을 치면서도 어느새 보면 또 뭔가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거다. 얼마 전에 분명히 아 난 안 돼. 그냥 보는 게 편하지 쓰는 건 힘드니까 보기만 하자. 그랬었는데, 힘들고 싫다면서 또 돌아와서 쓰는 걸 보면 왜 이러는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됐다. 어쩌면 애증인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고 안 풀리니 미워하게 되고. 그렇지만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그런 무한 순환. 언젠가 요행으로라도 글이 잘 풀리고 잘 써지게 되면 이 고리가 끊기는 날도 오지 않을까? 지금은 그 정도로 생각해 둘까 한다. 이야기를 펼쳤다 끝을 보지 못하고 접을 때에도 원래 연습할 땐 그런 거지, 습작이란 게 그렇지. 이런 게 쌓여서 더 나아지겠지. 나아갈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할퀴는 걸 멈추기로 했다.


어쩌면 이러다 영영 더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내가 그러고 싶다면 그게 맞는 길이란 생각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글을 써야만 하는 그 어떤 강력한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먼 바다로 나가진 못하고 해안가에 빙빙 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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