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진실, 같은 구조의 다른 이름

생각 끄적임

by 권동균

믿음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두가지 근본적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믿음과 진실은 모두 공통적 구조를 갖는다.

양측 모두 무언가에 대한 서술을 전제로 하고

그 사실을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우리는 '믿음'이라고 규정짓고

어떤 순간에는 우리는 '진실'이라고 규정짓는다.

믿음이라고 부르면 신앙적으로 색채를 띄고

진실이라고 부르면 학문적으로 비추어 진다.


이러한 명명적 차이는 우리를 흥미롭게 하며,

깊은 탐구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참인 명제는 귀납적이거나 연역적이다.

귀납적 논리의 특징은, 새로운 사실의 추가로 명제의 논리값(참/거짓)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연역적 논리는 형식적 논리로, 새로운 사실의 추가와 관계없이 논리값은 불변한다.


귀납적 논리에 따라서 참이라고 구분지은 명제에 대해서 우리는 진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주어진 전제 조건 속에서의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은 고대에는 '태양이 움직인다'는 믿음의 결과였다. 지금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라고 믿지만, 이것조차 실증적으로는 가장 작동하는 설명일 뿐이라는 점에서 귀납의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연역적 논리는 항상 참일까?

연역적 논리에서 참이라 인정하는 논리 관계는 항상 참일까?

예를 들어, 삼단 논법은 항상 참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누가 증명한 것일까?




진실이란 우리가 거짓으로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는 인지적 안정감을 말한다.

우리는 모든 반례를 검토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참'이라 여기는 형식적 논리 관계조차 왜 항상 참인지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규정된 논리 체계 안에서 그 논리 체계가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특정 형식적 논리 관계는 스스로를 증명하는데 사용된다면 '참'임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과학을 배운다는 것이 진리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계속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는 규칙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진실이란, 혼돈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의 가교에 불과하다고.




믿음은 이성과 관계없이 작동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이성적으로 거짓이라고 생각되는 믿음은 불안정하다.


인간의 뇌는 연결짓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특정 믿음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주위 상황에 비추어서 그것이 사실이 되게 하는 해석을 붙힌다.

믿음 이후에 이성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역설적으로 믿음은 이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성은 믿음 위에 지어진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특정한 조건들을 사실로 여기자는 무언의 약속 속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논리적 증명 없이 절대적 참이라 여기는 명제를

믿음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믿음은 감각이다.

거짓으로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는 인지적 안정감을 줄 때 믿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진실과 똑같다.

인류 공통된 전제 위에 있을 때 진실이 되는 것이고

특정 집단 내에서 공유할 때 믿음이 된다.

즉 믿음과 진실은 본질적으로 같다.

단지 보편성의 정도에 따라서 믿음이냐 진실이냐로 나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보편성은 절대적 '참'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에는 특정한 정서적 조건이 필요되어진다.

보통 믿음은 감동받아질 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여기는 보편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어떠한 정서적 조건도

필요로 되지 않는다.


즉, 진실은 감정 없이도 감정을 멈추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을 때,

그것을 진실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잊지 말자.

'참'이라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진실이란 이름의 믿음이 진정으로 '참'인지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증명 가능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이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

우리는 진실이란 다름 이름을 살포시 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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