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하나의 유머였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남의 세계를 멋대로 부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내 독선이 무너진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어느샌가 나는 무능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산적인 활동에서 멀어진 채
게임, 애니메이션, 판타지 소설 같은
현실 도피적 일에 빠져 살고 있었으니.
그런 구제불능이
다른 사람들의 보폭에 맞춰 걷는다는 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내가 배우지 않으면 더 이상 세상과 보폭을 맞출 수 없다는 위기감은
내 머릿속 낡은 운영체계를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 넓은 세상에 접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은 회사 동기와 1년간 타국에서
꽤 친밀한 생활을 보내게 된 이후였다.
그는 역사를 좋아했고
나는 그 역사의 의미를 좋아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뷔페에 가면, 항상 단순한 화제가
인간 정신과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토론이 되곤 했다.
가끔은 나는 그를 더 나은 존재로 진화시키고자 조언을 하곤 했었다.
동기들에게 경시받고 조롱당하는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참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식사 시간에 동기들이랑 같이 밥을 먹자."
"근무 시간에 자면 안 된다."
"항상 공상만 할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도전해보자."
"건강과 연애를 위하여 같이 운동해보자."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언제나처럼 불룩 튀어나온 배를 갖고
핸드폰을 보며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나는 그가 부끄러웠고
그는 그 자신이 부끄러웠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거울을 비추는 순간, 그는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거울을 통해 비춘 자신의 모습이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게
그는 진화해 온 것이었다.
그런 그의 세계를 강하게 흔든 그날,
무던했던 그가 분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그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남의 세계를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TV 속에서 나오는 신기한
흔들리는 바위와도 같다.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서 적당히 밀면 다시 돌아오지만
세게 밀면 그 바위는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혼돈의 문을 여는 자,
세계에서 가장 악한 죄를 짓는 자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누구나 혼돈을 마주할 용기와 지성을 갖춘 것이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