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러시아 1997년 5월 역사적 서명식이 열리다
2022년 2월 10일 쓰다.
이틀 전 ‘씬 스틸러’ 마크롱 대통령의 러시아 출장(2월7일 러-프 정상회담)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마크롱은 푸틴 대통령과 긴~ 테이블을 사이에 마주앉아 5시간 이상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사진 찾아보시면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 긴 테이블입니다. )
오늘은 잠시 ‘1997’이라는 숫자에 주목하려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러시아의 요구 가운데 하나가 ‘1997년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러시아의 요구를 요약하면
1> 나토의 추가 확장 금지,
2> 러시아 인근으로 나토 공격무기 배치 금지,
3> 유럽 내 나토 군사인프라, 1997년 이전 상황 복귀 등 입니다.
과거로 잠시 가보겠습니다.
1997년 5월 27일 오전 10시 30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서명식이 열렸습니다. 국제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정치 거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헬무트 콜 독일 총리 등. 뿐만 아닙니다. 이 역사적 서명식에는 NATO 16개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했습니다.
나토 정상들은 당시 불안과 불만에 사로잡힌 러시아와 < NATO와 러시아간 협력과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에 서명했습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3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했고, 이를 계기로 나토- 러시아 양측은 이후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면서 다시 한번 ‘평화’를 문서로 확인한 겁니다.
(* 당시 프랑스 언론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얄타 체제’를 잇는 ‘엘리제 체제’라며 이름 붙이기 경쟁을 하기도 했었죠.)
<NATO와 러시아간 협력과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는 대략 이런 내용들입니다.
▶양측은 인권을 존중하고 유럽안보의 불가분성(不可分性)을 인정하며 각국의 영토주권과 독립을 위협하지 않고 무력사용을 지양.
▶정치/군사적 협력=유럽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따른 감축목표 설정. NATO는 신규회원국에 핵무기를 배치할 의사도, 계획도, 필요도 없음을 선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차원에서 정보교환과 상호검증을 통한 신뢰구축 조치 이행.
▶NATO - 러시아 상설위원회=1년에 최소 두 차례 양측의 외무, 국방장관이 참석하는 상설 합동위원회 신설.
엘리제궁의 주인이던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유럽 평화건설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 협정은 21세기 평화시대의 서막"이라고 평가했었죠.
나토 확장에도 별다른 힘이 없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협정"이라며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런데 이 떠들썩한 1997년 서명식 이후 유럽 세계는 어떻게 됐을까요?
냉전 시기 미국이 주도한 ‘나토’ 맞은 편에는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있었죠. 냉전 종식과 함께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무너지고 그 회원국이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1999년 정식으로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내 새끼가 남의 새끼가 된 겁니다. 2004년에는 불가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 그리고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발트 3국)까지 모조리 나토에 가입합니다.
당신이 러시아라면? 당연히 불안하고 불만일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1997년 당시 러시아는 ‘이후 NATO가 발트 국가와 우크라이나 등 옛소련 공화국들을 새로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려는 시도를 할 경우’ 이는 “러시아의 턱밑에 칼을 들이대는 것으로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현재 2022년! 당시 러시아가 경고한 내용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연합뉴스가 작성한 지도입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