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대결의 상대였던 AI를 파트너로 다신 만난 이세돌 9단
10년 전, 인공지능 '알파고'와 마주 앉아 돌을 내려놓던 이세돌 9단의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당시의 대결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영역을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일종의 '생존 전쟁'이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인간이 기계의 계산에 밀려나는 순간을 목격하며 우리 모두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오늘, 다시 AI 앞에 선 그는 더 이상 싸우지 않습니다. 코딩 한 줄 모르는 상태에서 AI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자신만의 바둑 앱을 직접 구현해 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대결하는 인간'에서 '협업하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진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기술의 편리함과 혁신에 감탄하지만, 저는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독'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AI가 쏟아내는 수만 가지의 선택지 속에서, 결국 '이것이 옳다'라고 단호하게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순간은 오직 인간 홀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대안을 제시할 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으니까요.
기술은 문법일 뿐, 서사는 인간의 몫입니다
이세돌 9단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기술에 대한 적응력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도를 AI라는 도구에 투영해 구체적인 결과물로 완성해 낸 기획력,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서사(Narrative)입니다. 기술은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왜 만들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술을 잘 다루는 것을 능력이라 착각하지만, 진짜 실력은 ‘기술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선에서 나옵니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최적의 해답이 반드시 인간을 위한 최선의 해답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RULEMAKER: 질서 너머의 윤리를 묻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RULEMAKER'라는 가치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제어하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공동체에 미칠 파장을 미리 내다보고, 그 틈새에서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AI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진정한 리더십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능력'에서 탄생합니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기계가 닿을 수 없는 곳, 즉 자신의 신체 감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BODY), 기술의 궤적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ARTE), 비로소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고민하는(RULEMAKER) 과정입니다.
이것이 제가 교육을 통해 나가가고 하는 바 입니다. 우리는 AI를 파트너로 삼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되, 그 길 끝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도구를 쥔 인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윤리란, 결국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스스로 세상을 만드는 'RULEMAKER'가 되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