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계는 대개 흙이 묻은 채소와 계절의 속도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랬던 엄마가 예순이 넘어 식탁 앞에 수험서를 들고 앉았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처음에는 그저 노후 대비용 기술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저녁, 아빠의 오래된 잔기침을 걱정하며 가족들이 담배를 끊으셔야 된다고 잔소리를 하고 있던 그때, 엄마가 툭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그게 바로 흡인성 폐렴이야! 담배를 끊어야지!”
"라포 형성이라고 알아?“
엄마의 혀끝에서 굴러 나온 '흡인성 폐렴'과 '라포 형성'. 그 낯설고 전문적인 단어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때, 저는 보았습니다. 엄마의 눈동자가 이전과는 다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요. 배움이 누군가를 돌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롯이 엄마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60년 넘게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던 사람이, 비로소 자기만의 문장을 짓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그동안 공부했던 요양보호사 시험을 치르는 엄마를 위해 온 가족이 톡방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신 엄마는 힘이 없었습니다.
“너무 어려웠어” “답이 이거래! 너무 어이없지 않니?“
가족들은 황급히 위로를 덧댔습니다. 다음에 또 보면 된다고, 그 나이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실패를 기정사실로 한 알량한 위로들이 집안을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오전. 가족 단톡방에 무심한 카톡 하나가 툭 떨어졌습니다.
잔뜩 주눅 들어있던 수험생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예순의 나이에 스스로 일궈낸 성취. 그 달콤함을 맛본 자 특유의 쿨한 여유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합격을 하셨습니다. 자격증이라는 종이 한 장보다 더 값진, '나도 할 수 있다'는 단단한 감각을 획득하셨습니다. 저는 오늘도 배움을 통해 자신을 아끼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제 앞에는 엄마라는, 가장 뜨겁고 생생한 교과서가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