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부지런한 민족입니다. 자격증을 못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기록을 되살려줄 곳을 찾아 헤매는 기계적인 부지런함이었으니까요. 15년 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취득했던 TKT(국제영어교수지식시험) 자격증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을 알았을 때, 제 안의 방어기제는 여지없이 작동했습니다.
유학원의 답변은 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사본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충전 중 타버렸던 옛 휴대폰처럼 내 과거의 한 조각이 영영 소멸해버린 것 같아 속상함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속상함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니, 단순히 서류 한 장이 아쉬운 게 아니더군요.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스물셋의 내가 태평양을 건너 쌓아 올린 치열한 시간마저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때 저를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늘 버리라고 타박했던 엄마의 '부지런한 사랑'이었습니다. 본가 구석, 엄마가 보물처럼 쌓아둔 해묵은 짐들 사이에서 저는 기적처럼 2011년의 저를 만났습니다.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레슨 플랜과 당시의 공부 자료들. 디지털 기록은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엄마의 손길이 닿은 아날로그의 기록은 15년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그 낡은 종이의 질감이 손끝에 닿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배움은 내 이름 뒤에 붙는 몇 글자의 약어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온 내 삶의 궤적 그 자체라는 것을요.
직접 오클랜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본사에 메일을 보내며, 잊고 지냈던 이름들을 하나둘 소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투르지만 진심을 담아 영문 메일을 써 내려가는 동안, 신기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제가 시험을 치뤘던 센터 넘버는 NZ018이라는 회신을 받고 케임브리지에 DB요청 문의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기록을 찾기 위해 먼지 쌓인 옛 여권 사본을 다시 들춰보고, 지구 반대편의 기관들과 소통하며 보낸 오늘 하루는 제게 참 묘한 감상을 남깁니다. 낯선 땅 오클랜드의 도서관 창가에서 단어를 외우던 그 스물셋의 청춘이, 15년 뒤 한국에서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담은 연구원을 꾸리고 아이들에게 '기술 너머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그때의 저는 상상이나 했을까요.
기록을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서 저는 자격증 원본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15년 전의 내가 뿌린 씨앗이 지금 내 삶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있다는 확신입니다. 만료된 여권 속, 앳된 스물셋의 제가 묻습니다.
"너는 지금 너를 채우고 있니?"
저는 이제 웃으며 대답할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라는 물리적인 종이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때 내가 온몸으로 익혔던 배움의 감각은 결코 타버리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 기록을 찾아가는 오늘의 수고로움이, 내가 나를 얼마나 지독하게 아끼고 있는지를 증명해 주는 가장 우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말이죠.
참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의 끝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배움은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깊이를 확인시켜 주는 다정한 발굴 작업이라는 것. 오늘 저는 저의 잃어버린 기록을 통해, 저 자신을 다시 한번 깊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