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은 당신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나를 발굴하는 배움에 대하여

우리는 참 부지런한 민족입니다. 주말이면 카페마다 자격증 수험서를 펼쳐 든 이들로 가득하고, 퇴근 후에도 갓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강의 결제 버튼을 누릅니다. 그런데 문득,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차가운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듭니다.

"나는 지금 나를 채우고 있나요, 아니면 나를 소모하고 있나요?"

남들이 다 따는 자격증을 따고, 누군가의 뒤꿈치를 쫓아 허겁지겁 지식을 삼키는 배움은 사실 나를 아끼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만들어낸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칸막이 책상에 갇혀 결과물에만 매몰된 배움 끝에 남는 것은, 내 이름 뒤에 붙는 몇 글자의 약어와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뿐일지도 모릅니다.

광고인 박웅현 작가는 그의 저서에서 배움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어 봅니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은 '끄집어내다(Educe)'입니다. 교육은 밖에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죠."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제 마음속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움은 내 빈 곳을 타인의 지식으로 메우는 공사가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보석을 찾아가는 다정한 발굴 작업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배움은 자격증 점수보다 내 삶을 바라보는 통찰의 근육을 키워줍니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언어를 통해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경험입니다. 드론의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보다 값진 건,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을 통해 나의 좁았던 시야를 확장하는 깨달음입니다. 기술 너머의 인문학적 시선이 내 안에서 깨어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리듬으로 풍성해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아끼는 배움은 결코 조급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배움은 늘 결핍에서 시작하지만, 나를 발견하기 위한 배움은 호기심과 설렘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봐 주세요. "이 배움이 내 이력서를 화려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내 눈빛을 깊어지게 만들고 있는가?"

배움은 당신을 더 쓸모 있는 도구로 만드는 과정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깊고, 넓고, 아름다운 지도를 가졌는지 확인시켜 주는 가장 우아한 위로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요. 사실 저는 Tesol 수료증과 Cambridge TKT(국제영어교수지식시험) 자격증 원본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본가가 그동안 이사를 두번이나 했지만, 제 물건을 따로 버리진 않으셨다고 하셔서 있겠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취업을 했을때만 해도요. 제가 이 자격증을 다시 찾게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래교육연구가의 길을 가게 될지는 당시엔 정말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너무 소홀히 다루었나봅니다. 사본이라도 스캔해둘 것을 너무 속상하더라구요. 아마 사진은 찍어뒀을 거에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현지에서 구매했던 갤럭시 휴대폰 계속 쓰고 있었는데 어느 식당 구석 콘센트에서 충전을 하다 휴대폰 내장이 다 타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장님 말로는 그 콘센트 쓰면 안되는데 쓰셨냐고 하시더라구요. 굳이굳이 꾸역꾸역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콘센트를 찾아내 충천을 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복구를 신청했지만 고객센터에서는 내부가 다 타버렸나다 그래서 복구가 전혀 안된다고 하셨었어요. 어떤 문제였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결론은 자격증 사본 한장 남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가에 자격증은 없지만 당시 공부했던 자료들이 남아있더라구요. 실제 강의 Practice를 위해 작성했던 Lesson Plan Template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엄마한테 예전 물건들도 다 쌓아두고 사시는 것 같아서 안쓰는 물건은 좀 버리라고 했거든요. 다 필요하다며 버리지 못하시는 엄마가 참 답답해보였는데요. 작업물들을 발견한 순간 엄마에게 존경심이 생기더라구요. 엄마 덕분에 당시 공부했던 자료들은 남길 수 있었습니다.

챗지피티는 Cambridge에 제 DB가 남아있다면 자격증 원본은 받지 못해도 성적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해줬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필요할때 신청하면 되겠구나 쉽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유학원측에 문의해보니 어려울 것 같다는 회신을 듣고는 아쉬움과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혹시 모르니 직접 컨택해보자 하고 오클랜드 대학교에 문의 메일을 남겨둔 상태입니다. 15년이나 지났지만 혹시나 저의 DB가 남아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메일을 보낸게 불과 어제에요. 아직 회신은 못받았습니다.


왜 영어자격증들만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희안했습니다. 현지에서 취득했던 바리스타 자격증과 아케데미 과정 수료증들은 그대로 본가에 제 자료들과 함께 있더라구요. 아무래도 제가 job을 구할때 어떤 기관에 제출하기 위해서 따로 챙겨뒀던 것 같아요. 원본을 제출하고 못받았던지 아니면 받아놓고 신경안쓰고 어딘가 뒀다가 분실한 거겠죠. 영어 관련 성적증빙과 자격증만 사라진거 보면요.

어제만 해도 정말 너무 아쉽고 속상했어요. 챗지피티는 다시 취득하는 것도 방법이라는데요. 솔직히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당시보다 영어 실력이 더 나아지긴 커녕 훨씬 형편없어졌으니까요. 그게 있어야 내가 당시 영어 교수법을 공부했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을텐데 혹시나 메일에 남아있을까 싶어서 당시 주로 쓰던 메일도 다 뒤져보았는데요. 다행히도 당시 제 지도 교수님이였던 Toby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자료들은 있더라구요. 메일 내용을 보니 제가 초콜렛을 드렸었나봅니다.ㅎㅎ

어제만 해도 너무 속상하고 제 스스로가 참 한심하고 자괴감에 빠져있엇습니다. 그치만 제가 공부했던 사실을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 같이 공부했던 한국 친구들도 증인이 될 수 있겠죠. 저 포함 3명의 한국 친구들이 당시 자격증 수업을 수료했는데요. 여전히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한명은 LG, 한명은 대우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고요. 다른 한명은 당시 현지에서 함께 공부했던 외국인 친구와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고 있어요. 너무 로맨틱하죠? 유학생활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와 결혼까지 하다니요.

잠깐 이야기가 딴길로 새긴 했지만 결론은 저는 그 배움을 통해 영어 강사로 일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지금의 미래교육 연구가가 될 수 있었다는 거에요. 그동안의 배움을 통해 제 안에 있던 경험과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자격증을 찾지 못해도 제 배움과 경험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테니까요.

자격증이라는 숫자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보세요. 그리고 박웅현 작가의 말처럼, 당신 안에 숨겨진 반짝이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배움은,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뜨겁게 아끼는 방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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