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의 첫 기일이다.
용인에 모셨지만
첫 기일은 엄마가 한평생 사셨던 고향에서 지내기로 했다.
햇살이 곱다.
봄이 자리를 제대로 잡은 듯
창으로 내다보는 마을은 포근해 보인다.
하지만 안다.
삼척의 봄바람
그의 대단함을...
5월 초까지도
언제 어느 방향으로 몰아칠지 모르는 그 바람.
봄이 왔다고 랄랄라~~
샤방샤방 원피스를 입고 나가면
휘리릭~그대로 멈춰라
순간 마릴리몬로가 된다.
심술궂은 그 바람.
그 바람이 삼척의 봄바람이다.
바닷가로 나가본다.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방파제.
바다를 향해 서니
가슴이 뻥 뚫려온다.
하늘빛 바다 빛
모두 짙푸르다.
어느 작가의 묘사처럼
바닷물에 붓 하나 푸욱~
담 그었다 들면
뚝뚝.
푸른 원색 물감이 떨어질 것 같은...
오늘의 바다 빛은 그러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엄마의 평생을
나의 유년시절을
그리고 오늘의 나를 생각해 본다.
아득한 것 같기도 하고
허망한 것 같기도 하고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다.
"너 올해 00살이지?"
"응. "
"내가 딱 니 나이에 여기에 왔어."
"아 그랬구나."
"그러면 몇 년 전이지?"
"올해로 딱 8년이지."
"그럼 엄마를 7년간 모셨네?"
"그렇지. 내 인생 7년이 그렇게 날아갔지."
"후회해?"
"뭐 그건 아니지만..."
'날아갔다'라는 말에
서운한 마음에 쏘아붙인다.
"그래도 엄마 돌본 것 굉장히 의미 있잖아."
"그렇지 않았으면 언니 인생이 뭐 얼마나 달라졌을 것 같은데? 하던 식당이 대박 났다고 장담할수있나?"
나도 몰래 비아냥거린다.
못됐다.
"그럼. 의미 있지. 그냥 그렇다는 거지.
엄마 모시면서 식당하던것보다 ㄱ래도 나름 편안하게 잘 살았지."
괜한 자격지심이다.
언니한테 느을 미안했고 고마웠었는데
굳이 이렇게 까지 쏘아붙일 일인가.
엄마가 조금만 더 살아계셔 주셨더라면
나도 지금부턴 할 수 있을 텐데...
야속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못 해 드려 미안하기도 하고...
부모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날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아침부터 성질 한번 내 본다.
아쉽다.
서운할 만큼,
많이 아쉽다.
엄마는 치매를 오랫동안 앓으셨다.
치매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자식들이 곁에 없어서
1-2년은 걸린 듯하고
알고 난 후 8년 정도...
거의 10년을...
엄마는 이승에서 우리들과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그렇게 떠나셨다.
"저 숲에 아마 호랑이가 살겠지?"
건너 해변가 해솔숲을 바라보며 묻든다.
오늘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던 어린시절로 가셨나보다.
"우리집에 좀 데려다 주오.
서낭골에 우리집이 있소"
엄마의 유년시절 집을 가르킨다.
"나는 시집도 못 갔는지
아이도 못 낳았는지
자식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아버지마저 잊고...
주마다 돌아가며 다녀간 자식도 잊고
그렇게 그렇게
외로움만 느끼시다가
그렇게 가셨다.
유달리 부부애가 좋았던 엄마는
쉰일곱에 가신 아버지를 못 잊어 많이 힘들어하셨다.
10년 후 겨우 잊을 만했을 때 또 큰 아들을 잃었다.
생활력 강한 엄마.
막내 대학 졸업하고
유학 다녀와서 결혼까지 하자
엄마의 늙음은 한꺼번에 오기 시작했다.
6남매를 낳았지만 모두가 먼 곳에 나가 살았고
어쩌다 자식들 보러 서울에 오면
답답해하시며 일주일을 못 견디셨던...
방학 외에는 찾아뵙지도 못했던
살갑지도 않은막내딸도
참 많이 그리워하셨는데...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1년만 기다려주셨더라면
1년만 더~~
지금쯤 아마
엄마와 함께 웃으며 서로 쓰다듬을 수 있을 텐데
모든 게 그저 아쉽고
아쉽다.
아플만큼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