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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초요 Mar 04. 2022

6. 고향집에 왔다.

오늘은 엄마의 첫 기일이다.

용인에 모셨지만

첫 기일은 엄마가 한평생 사셨던 고향에서 지내기로 했다.


햇살이 곱다.

봄이 자리를 제대로 잡은 듯

창으로 내다보는 마을은 포근해 보인다.


하지만 안다.

삼척의 봄바람

그의 대단함을...


5월 초까지도

언제 어느 방향으로 몰아칠지 모르는 그 바람.

봄이 왔다고 랄랄라~~

샤방샤방 원피스를 입고 나가면

휘리릭~그대로 멈춰라

순간 마릴리몬로가 된다.

심술궂은 그 바람.

그 바람이 삼척의 봄바람이다.



바닷가로 나가본다.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방파제.


바다를 향해 서니

가슴이 뻥 뚫려온다.


하늘빛 바다 빛

모두 짙푸르다.


어느 작가의 묘사처럼

바닷물에 붓 하나 푸욱~

담 그었다 들면

뚝뚝.

푸른 원색 물감이 떨어질 것 같은...

오늘의 바다 빛은 그러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엄마의 평생을

나의 유년시절을

그리고 오늘의 나를 생각해 본다.


아득한 것 같기도 하고

허망한 것 같기도 하고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다.



"너 올해 00살이지?"

"응. "

 "내가 딱 니 나이에 여기에 왔어."

 "아 그랬구나."

"그러면 몇 년 전이지?"

"올해로 딱 8년이지."

"그럼 엄마를 7년간 모셨네?"

"그렇지. 내 인생 7년이 그렇게 날아갔지."

"후회해?"

"뭐 그건 아니지만..."

'날아갔다'라는 말에

서운한 마음에 쏘아붙인다.

"그래도 엄마 돌본 것 굉장히 의미 있잖아."

"그렇지 않았으면 언니 인생이 뭐 얼마나 달라졌을 것 같은데? 하던 식당이 대박 났다고 장담할수있나?"

나도 몰래 비아냥거린다.

못됐다.

"그럼. 의미 있지. 그냥 그렇다는 거지.

엄마 모시면서 식당하던것보다 ㄱ래도 나름 편안하게 잘 살았지."


괜한 자격지심이다.

언니한테 느을 미안했고 고마웠었는데

굳이 이렇게 까지 쏘아붙일 일인가.


엄마가 조금만 더 살아계셔 주셨더라면

나도 지금부턴 할 수 있을 텐데...

야속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못 해 드려 미안하기도 하고...


부모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날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아침부터 성질 한번 내 본다.


아쉽다.

서운할 만큼,

많이 아쉽다.


엄마는 치매를 오랫동안 앓으셨다.


치매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자식들이 곁에 없어서

1-2년은 걸린 듯하고

알고 난 후 8년 정도...


거의 10년을...

엄마는 이승에서 우리들과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그렇게 떠나셨다.


"저 숲에 아마 호랑이가 살겠지?"

건너 해변가 해솔숲을 바라보며 묻든다.

오늘은

호랑이를 무서워했던 어린시절로 가셨나보다.


"우리집에 좀 데려다 주오.

서낭골에 우리집이 있소"

엄마의 유년시절 집을 가르킨다.


"나는 시집도 못 갔는지

아이도 못 낳았는지

자식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아버지마저 잊고...

주마다 돌아가며 다녀간 자식도 잊고

그렇게 그렇게

외로움만 느끼시다가

그렇게 가셨다.


유달리 부부애가 좋았던 엄마는

쉰일곱에 가신 아버지를 못 잊어 많이 힘들어하셨다.

10년 후 겨우 잊을 만했을 때 큰 아들을 잃었다.


생활력 강한 엄마.

막내 대학 졸업하고

유학 다녀와서 결혼까지 하자

엄마의 늙음은 한꺼번에 오기 시작했.


6남매를 낳았지만 모두가 먼 곳에 나가 살았고

어쩌다 자식들 보러 서울에 오면

답답해하시며 일주일을 못 견디셨던...


방학 외에는 찾아뵙지도 못했던

살갑지도 않은막내딸도

참 많이 그리워하셨는데...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1년만 기다려주셨더라면

1년만 더~~

지금쯤 아마

마와 함께 웃으며 서로 쓰다듬을 수 있을 텐데


모든 게 그저 아쉽고

쉽다.


아플만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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