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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초요 Mar 06. 2022

8. 삼척 산불, 잃어버린 유년 이야기

20여 년 전 삼척 산불로 고향집을 잃었어요.

친정 엄마의 첫 기제에 참석하기 위해

칠 전 고향집에 왔다.

울진에서 시작된 불이

삼척 방향으로 번진다는 소리에

옆집은 늦은 밤에 대피를 하겠다고

옷가지를 챙겨 나가고

막내 동생은 언니의 또 다른 가족

대형견 두 마리를 차에 싣고

무조건 지금 바로 서울로 올라오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약 20여 년 전의 트라우마로

다들 넋 놓고 지켜보기 힘든가 보다.


이 예쁜 궁촌에도

20여 년 전 화마가 할퀴고 지나갔다.

그로 인하여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 물은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사진, 일기장, 즐겨 읽던 책 등 등

어린 시절 손 때 묻은 물건은

이제 내게 하나도 없다.

정확하게 나뿐만 아니라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기억

뇌가 기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울진 발화는 산림청의 보도에 따르면

2022년 3월 4일 오전 11시 17분경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처음으로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다.

20여 년 전 삼척 산불은

바로 우리 옆 마을 영은사 근처의 마을에서 발화되었다고 들었다.

거리 상으로는 약 3KM 떨어진 곳이었기에

어른들은 큰 불을 만나 본 경험이 없기에

다들 설마설마하며

그야말로 먼 산 불구경을 했다고...


그날이 생생하다.

배를 타고 화재로부터 대피하는 뉴스 장면을 근무 중에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 낯익은 바다 모습? 우리 앞바다 같은데?"

"에이, 설마?"

"아니에요. 궁촌 바다예요. 지금 이 불 어디에서 났다는 거죠?"

순간 아득했다. 혼자 계시는 엄마.


미리 소식을 접한 자식들은

미친 듯이 차를 몰고 고향으로 향하고...

도로가에 불꽃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시커먼 연기가 자욱한 도로

매캐한 냄새는 차문을 뚫고 들어오고...

지금은 서울에서 고향까지는 4시간도 안 걸리지만

그땐 아마도 7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달려가

짐 몇 가지를 싸들고 엄마를 태우고

차의 시동을 거는 순간

건너편 산에 있던 불이 언제 날아왔는지

우리 집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그 아슬아슬한 순간을 마주한 막내 동생.



불길은 소나무의 송진 때문인지

아니면 열기 때문인지

엄마 말씀으로는

도깨비불같이 휙휙 날아다닌단다.

산 쪽과 마을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기에

다들 설마설마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긴가 싶으면 어느 순간

이 산에서 불이 나고

이 집이 타는 가 싶으면

옆집도 아닌 저 건너 집이 불타오르고...


지금처럼 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때라

그 당시

마을에서는 그래도 집을 지키겠다고

호스로 물을 뿌리던 분들 중

몇 분은 유명을 달리하셨다.

작은댁 아버님도 그때 돌아가셨다.


동해 인근을 지나가다 찍었음(22년 3월 5일)

그 후

집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정부에서 주는 컨테이너 집에서

당분간 살아야 했다.

지금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컨테이너 박스 수준의 집에서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해도

그래도 여기가 편하다고 고향을 뜨지 않았던 엄마

때마침 방학이 되어

엄마를 만나러 와서 함께 며칠을 지냈다.

한여름 컨테이너 집의 뜨거운 열기는

낮시간에는 도저히 머물 수 없을 정도였다.


올봄 화재로

울진, 삼척, 동해, 영월...

삶의 전부를 잃으신 분들은

얼마나 망연자실할지 엄마 생각이 자꾸 난다.

손 때 묻은 살림살이를 모두 잃고

또 어떻게 삶을 이어가야 하실지?


하루하루의 삶은 또 얼마나 힘겨울까?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 연로한 나이에...


대피소에 마룻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워계신 장면을 뉴스로 대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엄마 생각도 나 더욱더


봄이 오는 이 길목에

은근히 밀려오는 찬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연로하신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드실 텐데...


구호물품과 이웃 돕기

20여 년 전에도 많은 물품들이 마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물품을 보고

엄마는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많이 위로가 되었다고

그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보았다고


그 고마운 손길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엄마는 이후

그 고마움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셨다.


남의 일 같지 않은...

화재,


나눌 수 있다는 것,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안다.


 

마을은 많은 사람들의 온정과 정부의 지원으로

보다 편리한 주거 환경을 갖게 되었고,

조그마한 어촌 시골 마을의 평화로움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찾아들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많이 아쉽다.

마을은 하루아침에 옛 모습을 잃었고

집집마다 손때 묻은 이야기들은 모두 날아갔고...


현재 화마로 고통을 받는 분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눈부신 봄 햇살에

남들이 희망을 외칠 때

절망 속에 빠져 있을 그분들께

감히

힘내세요.

마음 다해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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