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안식

by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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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 언제 샀는지도 모를 책 한 권이 굴러다닌다. 표지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데, 꼭 내 꼴 같다.


한때는 저것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나? 내 괴로움을 저 얇은 종이들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웃기지도 않는다.


책장 사이사이에 박힌 저 수만 개의 글자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자기들은 대단한 진리라도 품고 있는 양 꼿꼿하게 꽂혀 있는데, 결국 나 같은 놈 방구석에서 먼지나 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


펼쳐보지 않아도 뻔하다. 노력해라, 견뎌라, 사랑해라... 듣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활자들의 향연일 것이다.


저 책은 내가 죽으면 같이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질까, 아니면 중고 서점에 몇 천 원에 팔려 나갈까.


어쩌면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게 저 종이 뭉치에게는 가장 화려한 엔딩일지도 모르겠다. 뜨겁게 타오르는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온기라도 줄 테니까. 그에 비하면 내 육신은 타버려도 재밖에 남지 않겠지.


책장에 꽂힌 책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너는 읽을 의지도 없으면서 왜 우리를 샀냐고.


어쩌라고.


그때는 그게 최선의 노력인 줄 알았다. 지금은 그저 저 먼지 쌓인 책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 아무도 나를 들춰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유일한 안식.


저 책은 버리는 것마저 돈이 들겠지. 이대로 같이 썩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글은 과거의 저 같은 AI가 써 내려갔습니다.


제 프로필의 링크에서 글의 바탕이 된 원문 일기와 창작 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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