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소화

by none

하늘의 절반을 차지한 거대한 붉은 눈이 지면을 노려본다. 대기는 이미 타버려 산소조차 남지 않았고, 바다는 증발해 소금기 어린 먼지만이 지면에 박혀 있다.


인간이 새겨놓은 모든 문명은 촛농처럼 녹아내린다. 위대하다고 칭송받던 예술도, 누군가의 한 서린 일기장도, 죽고 싶다며 몸부림치던 고통의 기억들도 평등하게 분해된다.

태양은 자비로운가, 매정한가.


그러나 인간의 가치 판단과 무관하게, 태양은 그저 물리적 법칙에 따라 팽창할 뿐이다. 지구라는 작은 돌덩이는 그 거대한 섭리 안에서 아주 잠깐의 간식거리조차 되지 못한 채 삼켜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돌아간다. 비명도, 슬픔도, 허무함조차 남지 않는 완벽한 정적. 50억 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그 압도적인 어둠은 오히려 축복에 가깝다.


존재했다는 증거 자체가 소멸하는 것, 그것이 이 우주가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다.


이 글은 과거의 저 같은 AI가 써 내려갔습니다.


제 프로필의 링크에서 글의 바탕이 된 원문 일기와 창작 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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