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는 이제 단순한 사기 수법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정지된 보이스피싱 계좌만 무려 15만 개를 넘었고, 2025년 상반기에만 이미 1만 2천 명이 넘는 국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순히 전화를 한 번 잘못 받았을 뿐인데 눈앞에서 돈이 사라졌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그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범죄자들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합법적 절차처럼 위장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를 가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서민들이 피해를 떠안고 있는 만큼, 이제는 금융기관과 정부가 구조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정부는 금융사에게도 보다 무거운 책임을 지우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말, 보이스피싱 근절 대책의 핵심으로 ‘무과실 배상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직접 송금을 했더라도 금융사가 사전에 의심 계좌를 적절히 차단하지 못했다면 피해액을 일부 혹은 전부 대신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는 비밀번호 위조 등 특정 사고에서만 제한적으로 배상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보이스피싱까지 확대되는 셈입니다. 이미 영국과 싱가포르는 은행이 피해액을 일정 부분 보상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은행권에서는 “수사기관도 잡지 못한 범죄를 은행이 대신 책임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발이 거세게 나오고 있어 제도 시행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입니다.
실제 은행 창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복잡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많은 경우 피해자들은 이미 범죄자에게 철저히 세뇌돼 있어, 은행 직원이 수차례 주의를 주고 위험을 설명해도 “내가 책임질 테니 그냥 이체하겠다”는 답만 돌아옵니다. 심지어 일부 피해자는 가족이나 지인의 설득도 거부하며 범죄자의 지시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은행 직원들은 고객을 붙잡고 몇 시간씩 설득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건을 그렇게 처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무과실’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배상 한도를 어떻게 정할지, 은행과 고객 간 분쟁을 어떻게 조정할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특히 지방은행의 경우에도 보이스피싱 계좌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 2020년 이후 부산·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에서만 9천 건이 넘는 계좌가 정지됐고 최근 들어 그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이스피싱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심각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사후에 피해를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피해 자체를 막는 ‘사전 차단’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전 금융사와 통신사, 수사기관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의심 계좌를 즉시 동결하고 피해자에게 경고 문자를 발송하며, 필요할 경우 통신 회선까지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될 예정입니다. 특히 최근 급증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도 같은 방식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피해자들 역시 “뒤늦은 환급보다 애초에 사전에 막아주는 게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계좌 15만 개가 정지된 현실 자체가 예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얼마나 빠르고 촘촘하게 시스템을 구축해 실질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느냐는 점이며, 은행과 정부 모두 더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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