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흘러가려 애쓰지 않는다

애쓰지 않되, 무심하지 않게

by 온길

우리는 종종 ‘진심을 다하는 것’과 ‘애쓰는 것’을 같은 뜻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진심이란, 애써서 힘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온전히 담는 일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나에게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삶은 숨 쉬듯 당연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완벽히 해내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곧 진심이라 믿었다.
그 노력은 나를 성장시켰지만,
때로는 나를 증명하기 위한 애씀으로 변해 있었다.

나를 닳게 하는, 조용한 압박이었다.

돌아보면 그 애씀의 밑바닥엔 두려움이 있었다.
‘사랑받지 못할지도 몰라.’
‘내가 부족해 보이면 어쩌지?’
‘누군가 나를 실망스러워하면 어떡하지?’


애씀은 진심이라기보다

두려움에서 비롯된 통제의 다른 이름이었다.
결과를 쥐려는 마음,
노력의 크기만큼의 보상을 확인하고픈 마음,
내가 마음을 쓴 만큼 상대도 내게 마음을 써 주기를 바라는 마음.


반면, 허용한다는 것은 포기하거나 무기력하게 내버려 두는 뜻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결과를 조급하게 통제하려 하지 않는 태도다.


애쓰지 않지만, 무심하지도 않은 상태.


그것은 신뢰의 다른 이름이며,

그 안에 평온함이 깃든다.




꽃은 다른 이보다 빨리 피어나려 애쓰지 않는다.
제 때가 오면, 피어난다.


물은 흘러가려 애쓰지 않는다.
흐름을 막는 돌이 있으면 돌아가고,
깊은 골을 만나면 그 속에 잠시 머문다.
그러면서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애쓰지 않되, 무심하지 않게.


아이들이 실수할 때, 예전의 나는 바로 개입했다.
“그건 이렇게 해야 해.”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건 관심이 아니라 조급함이었다.
이제는 잠시 멈추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을,

실패할 경험을 허용한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성장과 관계의 유연함이 자라는 선순환을 본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그렇다.
내 안의 에너지가 넘칠 때 자연스레 흘러가면
그건 애씀이 아니라 선물이다.
하지만 ‘이만큼 했으니 알아줘야지’라는 마음이 끼어들면 그 진심은 무거워진다.
바라지 않고 주는 일,
그것이 애쓰지 않되, 무심하지 않게 사는 법이다.



이제는 완벽을 좇기보다,
꾸준히 나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용한 진심을 담아 몇 줄의 글을 쓰고,
누군가의 하루에 온기 담은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진심을 다하되 애쓰지 않고,

무심하지 않게 허용하며 살아가는 일.


삶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나답게 피어나는 것임을,
그렇게 조금씩 나의 바다에 다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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