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툽

2026 One Word

by 온길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다짐을 한다.
올 한 해
무언가를 해내겠다고.


나 역시
매년 하나의 단어(one word)를 고르고,
그 말을 일 년 내내 붙잡은 채
방향을 찾아가는 편이다.

올해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연금술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책에서
다시 만난 단어가 있었다.


마크툽(Maktub).



산티아고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입을 통해
툭, 하고 건네졌던 말.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지금의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을 때
마치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듯
조용히 들려온 한마디.


이미 기록되어 있다.


처음엔 그 말이
운명처럼 들린다.
더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흐름에 맡겨도 괜찮다는 말처럼.


그러나 산티아고는
그 말을
체념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여정이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믿음으로.


그래서 그는
그 말에 기대어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길을 떠나고,
망설이며,
세상이 건네는 표지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여정을 끝까지
통과해 나간다.


그래서 곱씹을수록
마크튭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진 하나의 신뢰처럼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마크툽이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읽어야 할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지 못한 채
오늘이라는 장면에 들어선다.

어떤 날은 선명한 사건이 기록될 것이고,
어떤 날은 여백처럼 조용히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페이지의 모양이 아니라
그 페이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같은 장면이라도
실패로 읽을 수도 있고,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멈춤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축적의 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해석의 선택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그래서 나만의 인생대본이라면,
나는 그것을
긍정의 방향으로

읽어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을 미화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장면도
나를 무너뜨리는 쪽으로만
해석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오늘은
내 인생대본의
몇 페이지쯤이었을까.


눈에 띄는 사건이 없었던 날도
그 하루를 통과해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미 다음 장으로 넘어왔다.

그 한 페이지 분량의 삶을
나를 믿는 언어로 읽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새해의 시작은
그래서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 믿음을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모든 서사를 아직 알지 못해도,
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라는 확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갈 사람 역시
나라는 사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대본의 한 페이지를
조용히 넘긴다.
해석하는 선택권을

내 손에 쥔 채로.



2026년의 one word.


마크툽.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보다는
내가 끝까지 읽어야 할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떤 방향으로 해석할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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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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