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의 귀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by 온길

어쩌면 우리는
혼자 있지 않기 위해

애써왔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꼈고,
누군가의 곁에 머무르면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독은 사실

불편하다.


조용해질수록,
분주함으로

애써 가리고 외면해 왔던 것들이


또렷해지니까.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한다.


그대들은 이웃 사람들 주위에 몰려들면, 이 사실을 아름다운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이웃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은 그대들 자신에 대한 옳지 못한 사랑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웃에게 가며, 그대들은 그것을 덕으로 삼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기 위해 이웃에게 달려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잃어버리기 위해 이웃에게 달려간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그대들의 감옥으로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웃 사랑이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로 달려간다.

그 곁에 머무는 일을
덕이라고,

헌신이라고 부르면서.


그러나 니체는 단호하다.
그것은

질 나쁜 자기 사랑이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독은

고통이자 감옥이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로운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라,
문제로부터 도망칠

핑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군가 대신 걸어줄 수도 없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선명해진다.




니체는 말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한 걸음, 단 한걸음도 타협하지 말라!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보면,
나는 종종 혼자일 수 없었다.


역할 속에 머무는 일이 편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 자신이 되는 일보다

더 안심이 됐다.


교사로서,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을
자꾸 미뤄두었다.


하지만

나아가고 싶다면,
언젠가는

혼자 서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단 한 걸음도
나 대신 걸어 줄 타인은 없다.


결국 삶은
각자의 다리로 건너야 하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의도적으로

고독을 연습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의 속도를 확인하고,
나의 방향을 점검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니체의 문장을 다시 붙잡아본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이 말은
냉정한 선언이 아니라
정직한 초대에 가깝다.


사람들 곁을 떠나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있더라도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라는 초대.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에게로 귀환 중이다.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발로 서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하면서.


그것으로,


나는


오늘의 나를


진짜 사랑하는 중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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