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나는 나를 놓아주기로 했다.
엄마가 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일 나를 깨우던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운동.
단단한 루틴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도미노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늘 나를 증명하고 지탱해 오던 삶의 시위를
이번에는 스스로, 툭— 내려놓아 본 것이다.
사실 일부러 나를 내버려 둔 게 맞다.
밖은 너무 추웠고,
이 달콤한 게으름의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느릿느릿 식사를 했다.
생산적인 일이라 부를 만한 것은
단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드라마 속 타인의 삶을 유영하며 하루를 보냈다.
엄마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만 남겨둔 채
‘나’라는 개인의 시간은
이토록 무심하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무너짐이 완벽하게 개운하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오히려 더 피곤한 기분마저 들었다.
늘 긴장하고 있던 마음의 태엽을
억지로 풀어헤친 대가였을까.
익숙하지 않은 여백이 주는 묘한 죄책감이
찌뿌둥한 몸살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잘한 일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에는 분명
그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책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활은 화살을 쏘기 위해 존재하지만,
화살을 쏘지 않을 때는
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두어서는 안 된다.
시위가 늘어져야
다음번에 다시 힘껏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활의 시위는
너무 오랫동안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주일간의 무너짐은 어쩌면
다음 화살을 제대로 날리기 위해
시위를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완’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이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한다.
잘한 것 같지는 않았던
그 무거운 쉼표가,
실은 오늘이라는 여행의 페이지를 넘기기 위한
가장 경건한 준비였다는 사실을
출국 게이트 앞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어떤 날은 감각이 이끌고,
어떤 날은 사유가 정리하는 삶.
그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배워가는 이 걸음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성숙한 자리로
데려가길 소망한다.
나는 이제
낯선 풍경 속에서
다시 ‘나’를 만날 준비를 마쳤다.